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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1월 4일] 자유로운 개인을 위해

입력
2014.01.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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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아마도 40대 이상의 세대들이라면 이렇게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을 기억할 것이다. 1968년 말에 반포된 이 헌장을 초등학생들까지 무조건 외워야 했다. 짧은 글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하도 득달해대고 외지 못하면 급식을 주지 않거나 집에 보내지 않고 교실에 잡아두는 통에 억지로 욀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린 마음에도 이 첫 구절이 도무지 불편했다. 나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랑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이지 그런 거창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나'로 태어났지 '우리'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말은'교육' 헌장이지만 내용은 군국적 전체주의헌장에 불과했다.

모든 공식행사뿐 아니라 조회 때마다 그 헌장을 암송해야 했다. 그걸 욀 때마다 머릿속에 박힌 것은 나보다 '우리'가 우선이며 민족중흥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위해서는 기꺼이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가 다져져야만 했다. 그렇게 세뇌시켜놓고 당시 권력은 바로 그 다음 해 헌법을 뜯어고쳐 삼선개헌을 감행했고, 급기야는 그 이태 뒤에는 아예 영구집권을 위해 10월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를 저질렀다. 그것도 모자라 긴급조치법이라는 초헌법적 폭력까지 자행했다. 많은 이들이 거기에 저항했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박수치며 인정했다. 그 바탕을 마련한 것이 바로 국민교육헌장이었다. 그 압권은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라면 나의 발전들이 축적되어 자연스럽게 사회와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고,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우선임에도 책임과 의무만 강조했을 뿐 아니라 권력(겉으로는 국가라는 포장으로)에 대한 '봉사'를 은연중 강요했다. 도대체 가장 기본적인 '자유로운 개인'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 헌장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의지도 없는 철면피한 헌장이다. 그걸 교육헌장이랍시고 지껄여댔다. 그리고 그렇게 교육받은 이들이 지금의 중장년층을 형성했다.

지금의 정부를 1년 동안 지켜보면서 그 못된 헌장을 저절로 떠올리게 되는 것이 나는 두렵고 화가 난다. 미래와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할 이 중요한 시기에 여전히 공안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 시민들을 윽박지르고 양두구육을 태연하게 자행하는 것을 보면 10월유신의 구태를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내가 진짜 두렵고 화가 난 것은 그 안에서 자행되는 '자유로운 개인'의 압살과 권력에 기생하며 전체주의를 교묘하게 꾀하는 하이에나 같은 정치인들과 망나니 칼 휘두르며 제 잇속만 챙기는 가짜 언론인들의 탐욕이다.

그 어떠한 가치도 '자유로운 개인'의 가치보다 클 수 없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다. 새해 덕담이라도 해야 하는 게 정월 첫 주의 일일 텐데, 이런 푸념이나 하고 있는 세상이 참 답답하고 숨 막힌다. 70년대 유신의 모습과 80년대 군부독재의 모습을 이렇게 뻔뻔하게 재현하고 있는 기시감에 말문이 막힌다. 도대체 우리의 뇌에 박힌 그놈의 국민교육헌장은 언제까지 틀어박혀 있을 것인가. "길이 후손에 물려줄 영광된 통일 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며" 운운하며 지금 청춘들의 고민과 고통이 그들이 저지른 사회 구조적 병폐 때문임을 외면하고, 통일은 반공과 공안으로 뒤 범벅해 놓고서 '창조적' 미래를 꿈꾸란다.

교육해야 할 국민이 아니라 자유로운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우선임을 올 한해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무지도 외면도 시대에 저지르는 죄이다. 제발 머릿속에 박힌 국민교육헌장의 찌꺼기들부터 완전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씻어내자. 그래서 내년 정월에는 덕담다운 따뜻한 말 좀 전해보자. 자유로운 개인을 위해!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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