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0시 50분쯤 서울 가산동 '수출의 다리' 인근 도로에서 음주단속 중이던 서울 금천경찰서 진재수(41) 경사와 김종근(37) 경장 앞으로 승용차 한 대가 멈칫멈칫 다가왔다. 음주 운전자가 모는 차량들이 흔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운전자 김모(50)씨가 힘없이 숨을 뱉자 음주 감지기에 노란 불이 들어오고 '삐빅' 소리가 났다. 김씨는 "전날 저녁 소주 서너 잔을 마시고 귀가했다가 출산이 열흘 가량 남은 아내가 갑자기 진통을 호소해 급히 산부인과로 가는 길"이라며 순순히 음주 사실을 인정했다. 조수석에선 김씨 아내(38)가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김 경장은 김씨를 뒷좌석에 옮겨 타게 하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긴급 상황을 알리기 위해 동료 진 경사는 순찰차 비상등을 켠 채 뒤따라 갔다.
단속지점에서 산부인과 병원까지는 약 3㎞. 김씨의 아내는 김씨와 김 경장의 부축을 받아 무사히 분만실로 들어갔다. 김씨는 한숨 돌렸지만 김 경장의 고민이 시작됐다. 긴급상황이었지만 음주 사실이 확인된 이상 음주 측정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경장은 김씨를 설득해 음주 측정을 받도록 했다. 김씨의 아내와 의료진도 선처를 호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측정 결과 김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11%로 훈방 조치됐다.
김 경장은 "고통스러워하는 산모를 보고 일단 병원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경찰로서 할 일을 했고, 측정 결과 김씨를 훈방하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아내는 2일 오전 4시쯤 딸을 순산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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