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의 이례적인 '개각 부인' 브리핑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새해를 맞아 정부와 당, 청와대 주변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던 개각설을 잠재우기 김 실장이 밝힌 내용은 딱 3문장이었다. 소요된 시간도 1분을 넘지 않았다. 김 실장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황급히 춘추관 기자실을 떠났다. 한 마디로 "개각은 없다"는 일방 통보였다.
신년 업무에 매진해야 할 내각이 개각설로 동요하는 것을 막겠다는 회견의 취지 자체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TV로 생중계된 김 실장의 회견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는 얘기가 많다. 개각이 필요 없다면 그 이유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은 찾기 어려웠고, 일견 '대통령이 개각은 고려하지 않으니, 딴 소리 말라'는 고압적인 목소리로 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개각설이 계속 흘러나왔던 것은 따져 보면 현 내각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새누리당에서도 국정 쇄신을 위해서는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 일부 장관들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적 경제발전 도모"나 "국가안보를 공고히 지켜나가야 할 중대한 시기"라는 김 실장의 짧은 배경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기보다는 '인사청문회 트라우마' 라는 경험칙에 세간의 생각이 기울게 뻔하다.
더욱이 이번 개각설이 정부 1급 공무원 물갈이와 맞물려 있는 터라, 관가에선 "장관을 바꾸기 힘드니, 고위 공무원을 타깃으로 삼아 기강을 잡겠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런 불만이 나오는 상황이라면 김 실장의 고압적인 회견으로는 권력에 대한 불신만 초래할 뿐 공무원 조직의 쇄신은 될 턱이 없다.
인사가 대통령 고유 권한이긴 하지만,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국민에게 통보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위험하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의중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인사다. 민심과 호흡하지 않는 인사는 민심 이반과 직결돼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제기된 불통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6일 신년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지만, 청와대의 이번 개각설 대처를 보면 불통의 뿌리가 깊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권위주의 자세에서 비롯된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 데 그럴 생각이나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부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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