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들 때 주문처럼 외우는 문장이 혹시 있는가. 올해부터 나는 세 가지 동사에 기대어 삶이란 여행을 이어가려 한다.
이란 책이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12권 12책의 기행 시문집이다. 산과 강과 바다와 섬을, 문장을 따라 어루만지는 재미가 각별하다. 고려의 도읍지 개성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을 지을 때 이 책을 만났다. 옛길과 마을 풍경을 확인하는 것은 뒷전이었고 곧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다채로운 문장을 때론 말처럼 때론 배처럼 타고,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하며 노닐었다. 내 소설의 독자들에게도 누워서 노니는 기쁨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 추억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자신도 '와유록'을 쓰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고 이성규 감독이다. 그때 벌써 암 투병 중인 이 감독은 바깥출입이 어려워 병상에서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2013년 11월 5일, 그는 이렇게 적었다.
"간암 4기인 다큐멘터리스트는 삶의 끝자락 즈음 죽음과 마주한 채, 지금까지 세상과 사람에게로 여행한 것들의 시선과 느낌을 정리한다. 누워 있음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낳지만, 사실적 상상력을 무한대로 펼칠 수 있기도 하다. SNS를 통한 소통은 그걸 가능케 한다."
그리고 그는 12월 13일 임종할 때까지 와유의 기록을 띄엄띄엄 적어나갔다. 나는 그가 글을 올릴 때마다 거듭 읽고 밑줄을 그었다. 뜨겁고 짙은 문장이 많았다. 오래 길 위를 떠돈 영혼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인도 바라나시 갠지스 강 위의 꽃잎처럼 유유히 흐른다. 구체적인 시공간의 경험을 정확히 짚어 설명하면서, 또한 그 풍경을 지나온 지금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본다. 문득 묻고 스스로 답한다. "그런데 그걸 아는가, 여행과 와병의 공통점을? 여행과 와병 모두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한다는 것."
늦가을에 이성규 감독의 극영화 를 보았다. 내겐 이 작품이 한 예술가의 고요하면서도 치열한 중간 결산으로 느껴졌다. 질주하다가 잠깐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엇을 위해 달려왔던가를 되살피는 이야기. 더 멀리 도약하기 위해 무게중심을 뒷다리로 옮긴 벵골호랑이를 닮은 영화였다. 인생을 던진다는 것, 최대한 밀착하여 인도의 모든 것을 꼼꼼히 담으려는 바람으로 들끓던 시절들. 영화는 열망으로 가득 찬 다큐멘터리 피디 병태를 따라간다. 이성규 감독은 카메라 뒤에 서서 젊은 날의 초상을 만들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가까이서 본다고 더 잘 보이는 건 아니더라."는 마지막 대사는 의미심장하다. 여전히 이 일에 인생을 던지겠지만, 방식의 변화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논픽션에서 픽션까지, 여행자이자 예술가이자 구도자의 안과 밖을 아우르는 영화가 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 날 나는 제안했다. 이성규 감독이 자신만의 '와유록'을 완성한다면, 내가 감히 발문을 쓰겠노라고. 그는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약속은 지켜지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한다. 인생에선 흔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약속을 미완의 형태로 미루고 싶을 때는 이유를 밝혀둘 법도 하다.
노닐며 던지고 받아들이려 한 삶의 순간들은 이제 이성규 감독에게서 우리의 나날로 옮겨왔다. 한 달 남짓 그가 적은 문장으론 책을 만들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작업해온 이들과 또 그의 삶에 감동한 이들이, 와유의 기록을 좋아하고 댓글을 달고 공유하며 각자의 삶으로 잇는다면 언젠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지 않을까. 그때도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감독이 '와유록'을 쓰고자 했던 숫눈 같은 첫 마음을 인용하며, 서툰 고마움을 보태고 싶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썼다. '인생에서 목적을 가지는 것은, 죽음에 대한 최선의 방어이다.' 지금의 내게 목적을 가지는 건, 내 상황을 팔아서라도 나를 기록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 앞에 직면한 죽음과의 투쟁이다. 공격적이지 않은 최선의 방어로서 말이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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