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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월 4일] 반걸음 더 내딛어야 하는 2014년 한국경제

입력
2014.01.0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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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의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라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다. 이로써 한국경제는 재벌중심 체제에서 혁신기업중심 체제로 가는 길로 반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남은 반걸음은 물론 기존 순환출자 금지다. 그동안 재벌중심 체제는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큰 축이었으나, 이제는 미래를 위해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

문제의 핵심은 경제를 끌고 가는 주체가 누구여야 하느냐 하는 것이다. 고도성장 과정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투자하느냐 하는 결정을 하나의 중심 곧 정부에서 하는 체제 보다는 몇 개의 중심에서 결정하는 재벌체제가 나름대로 효율적이었다. 이런 각도에서 1990년대 말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을 찾던 중국의 정책연구자들이 우리나라 재벌모델을 들여다보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재벌이라는 옷이 변모한 한국에는 이제 맞지 않게 되었다.

한국은 현재 10대 재벌이 생산액 면에서나 주식가치 면에서나 경제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10대 재벌총수 일가들이 한국경제의 절반 이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아무런 정당성도 없다는 것이다. 선출된 권력도 아니고 국민이 위임한 것도 아니다. 총수일가의 주식 지분은 통상 그룹 전체 주식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그 많은 기업을 거느린 기업군을 지배하고 있는가. 그 비밀이 순환출자라는 요술방망이다. 순환출자는 비정상적인, 사기성이 농후한 기업지배 수단이다.

어떤 이들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재벌체제로는 더 이상 쥐를 잡지 못할 거라는 데 있다. 제조업 시대에는 재벌의 덩치가 필요했지만, 지식산업시대에는 벤처기업이 일으키는 혁신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주커버그, 아마존을 만든 제프 베저스 등 지금 세계를 움직이는 기업가들은 혁신을 바탕으로 벤처기업에서 성장한 사람들이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를 거쳐 편법과 탈세로 물려받은 재벌을 확장하고 중소기업을 밀어내고 쥐어짜서 돈을 번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벤처기업가들이 세계적 규모로 성장하기 힘들다. 재벌들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효율적인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있어야 한다.

순환출자금지는 대기업의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다. 총수일가가 온갖 기업들을 묶어 지배하는 것을 제한할 따름이다. 대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잘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삼성창업자 집안과 현대창업자 집안이 자자손손 먹는 사업, 입는 사업, 건설 사업, 돈 사업을 다 하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대기업은 세계적 규모로 키우되 대재벌은 해체해야 나라가 산다.

이번 신규순환출자금지법에서 눈에 띄는 것 한 가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공시토록 한 것이다. 쳐다보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일부 그룹의 순환출자 지도도 전에는 몇 사람들만 볼 수 있었으나 이제는 온 국민이 볼 수 있게 됐다.

신규 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를 허용하면 경쟁의 규칙은 더 불공정하게 된다. 기존에 부당한 행위를 하던 사람들은 계속 할 수 있고, 안 하던 사람들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규순환출자 금지는 제도적 개혁의 시작일뿐 그 논리적 귀결은 기존순환출자 금지이다. 개혁의 충격을 우려하여 이를 부담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점진적으로 합리적으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5년쯤부터 순환출자금지 입법을 추진하여, 2007년에는 순환출자 고리에 걸려 있는 기업 중 하나의 의결권을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었다. 이 법안은 현실적으로 무리 없이 실행할 수 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을 제외하고는 대화를 나눈 대부분의 그룹이 이 법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한국은 이제 미래를 향해 반걸음을 더 내딛어야 한다. 기존순환출자를 금지해야 한다. 벤처에서 출발한 혁신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클 수 있도록 장애물을 치워줘야 한다. 걸림돌이 되는 재벌체제는 극복되어야 한다.

채수찬 카이스트 기술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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