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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단순히 소득 부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참여와 기회의 결핍 느낀다면 당신은 '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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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단순히 소득 부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참여와 기회의 결핍 느낀다면 당신은 '빈곤층'

입력
2014.01.0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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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2만3,000 달러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 빠른 속도로 빈곤 인구가 늘고 있다는 말에 수긍할 수 있는가. 절대적 의미의 빈곤 기준에 비춰본다면 우리의 경제수준에서 배를 곯거나 옷을 못 입는 사람은 분명 극소수다. 박노해 시인마저 지난 2009년 "69억 인구에 비춰보면 국내엔 더 이상 가난한 사람이 없다. 아직 부자가 되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다"고 말했을 정도다.

현재보다 크게 경제수준이 낮았던 지난 1989년 서울에서 '아시아 도시빈민대회'가 열렸을 당시 일화다. 88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전두환 정권은 공항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변 판잣집들을 철거하거나 보이지 않도록 가림막을 설치하며 이른바 '88서울올림픽 도시미화'를 진행했다. 이때 빈민대회에 참석해 우리의 봉천동 산동네를 지켜본 개발도상국 출신 참가자들은 "여기가 무슨 가난한 동네냐"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들의 기준으로 상수도 시설이 돼 있고 다양한 전기제품을 사용하는 이들의 주거지가 빈민촌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처럼 이미 수십 년 전에 객관적인 의미의 '빈곤'을 벗어난 것일까.

철거민 정착촌에서 12년을 보내며 고 제정구 선생 등과 공동체 생활을 하며 도시빈민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지낸 저자는 빈곤에 관한 개론서와 같은 이 책에서 빈곤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리는 과연 빈곤의 굴레에서 탈출하고 있는지에 대해 세밀하게 따져본다. 저자가 내린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여전히 '빈곤'하다. 아니 과거보다 빈곤의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지 그 범위에 들어가는 숫자는 오히려 늘었다.

빈곤선(중위소득의 50~60%선)이하의 인구를 의미하는 빈곤율은 2000년대 후반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15%에 달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1%보다 높은 수준으로 우리는 '가난'이라는 사회문제를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빈곤율의 상승추세는 외환위기 때 과거 대비 최고점을 찍은 이후로 계속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여전히 100명 가운데 15명의 빈곤층을 이웃으로 두고 있다. 객관적 의미에서도 여전히 가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말이다.

빈곤은 항상 동시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을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더 넓은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게 아닌데 빈곤선 이하의 인구가 '밥을 먹고 옷을 입는' 수준 이상이라는 이유로 '가난'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단지 소득이 부족한 것이 빈곤의 전부가 아니라 주거, 고용, 교육, 건강, 시민권 및 정치참여 기회 등 다양한 차원에서 결핍하다면 빈곤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 같은 이유로 유럽국가들은 '빈곤(Poverty)'이라는 말 대신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는 용어로 가난을 설명한다"고 덧붙인다.

가난을 심화시키는 것은 빈민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뿌리 깊은 시각과 많은 편견이다. 저자는 '빈민은 그림의 음영과도 같다. 그림의 대비 효과를 위해 필요한 존재다'는 필리프 에케의 말 같은 잘못된 생각이 현대 우리 사회에도 다양하게 변주된다고 지적한다. 빈민이 공통으로 지니고 있는 습관 및 가치체계를 뜻하는 '빈곤문화론'에 대한 논쟁 또한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일각을 보여준다고 책은 강조한다. 저소득층 가운데 알코올 중독자들이 많은데 이를 두고 마치 '빈곤은 빈민들 자신의 책임'이라는 식의 편견이 굳어지는 점도 꼬집는다.

빈곤을 벗어나고 퇴치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많은 방안이 사실은 거짓이거나 미신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가난이 공부의 자극제가 되어 이른바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믿음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학력과 학벌은 철저히 대물림되고 있으며 학력은 자본이 된 지 오래다"며 "가난한 집 부모는 아이들을 학업에 매달리게 할 힘과 자원, 시간, 정보, 돈이 없다"고 말한다. 이른바 '하면 된다'는 식의 희망의 이데올로기는 낮은 곳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북돋아 주기는커녕 빈곤층에 머문 사람을 단죄하는 낙인이 된다는 것이다. 책은 "자본주의 아래 빈곤은 당연하다"고 믿는 기득권층이 가난의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라 강조한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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