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숨(40)의 행보는 숨가쁘다. 가장 부지런히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들의 명단을 작성한다면 그의 이름은 가나다 순이 아니어도 가장 앞머리에 올라야 응당하다. 1997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후 첫 소설집 이 나온 게 7년 만인 2005년. 그 후 8년간 맹렬한 기세로 그는 무려 여섯 편의 장편소설과 세 권의 소설집을 세상에 내놨다. 도식적으로 계산하자면, 1년에 1.25권을 내는-그것도 소설만-왕성한 생산력이다. 문학상이 성취의 유일한 잣대는 아니지만, 지난해에는 단편 '그 밤의 경숙'으로 현대문학상을, 장편 로 대산문학상을 받으며 결실도 맺고 있다. 그 또한 숨가쁘게.
는 2010년과 2011년 쓴 아홉 편의 단편을 묶은 그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이 사회의 가장 외지고 추운 곳, 늙고 외로운 이들로 향하는 시선은 여전하다. 강직한 리얼리즘. 서기 2014년의 리얼리스트에게 요는 리얼리즘이라기보다 강직함일 것이다.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넌더리 나는 이곳의 응달을 집요하게 들춰내는 강직함이야말로 김숨 스타일의 '시그니처'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한 편을 빼고는 모두 가족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 가족들은 대개 도시 중산층 가정의 구성원이 아니다. 실업과 실연의 고통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도 아니다. 대부분의 주인공들은 자식으로부터 버림 받은 독거노인이거나 자식들에게 피를 빨리느라 죽음의 날까지 노동을 멈출 수 없는 계급 사다리 가장 밑바닥의 노인들이다. 가혹한 독서의 과정을 통해 독자는 가족이란 착취의 제도일 뿐이라는 절망과 맞닥뜨리게 되지만, 다행한 건 삶이란 게 퍽이나 길어서 착취와 피착취의 구도는 어쩔 수 없이 재편성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작품 대부분은 자동차 안에서 서사가 진행된다. 그 자체로는 고립되고 밀폐된 공간이지만 이동수단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파편화한 가족들을 이어주는 일종의 끈 같은 서사장치인 셈이다. '막차'의 주인공은 시골마을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며 근근이 먹고 사는 노부부. 암 투병 중인 며느리가 오늘밤을 넘기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고속버스 막차에 올라탔다. 시어머니는 뻣뻣한 성격의 며느리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며 내내 흉만 보면서도 어쩐지 그 병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막연한 죄책감이 든다.
응급차에 구순 노모의 시신을 모시고 선산이 있는 옥천으로 내려가는 늙은 딸은 요양급여를 받기 위해 어머니를 치매 환자로 둔갑시켰던 일이 끝내 사무치고('옥천 가는 날'), 40년 가까이 처자식을 버리고 외지 생활을 해온 굴삭기 기사는 구제역으로 살처분할 돼지 구덩이를 파면서 아버지를 증오하는 아들의 끈질긴 요구에 마침내 굴복하고자 한다('구덩이').
운전 중 난폭한 퀵서비스 기사와 시비가 붙어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고의적 인명사고를 내고 한밤의 도로를 질주하게 된 자동차 영업사원 남편과 휴대전화 콜센터 직원 아내의 이야기('그 밤의 경숙')와 전원주택 자리를 찾기 위해 강화도의 한 부동산에 들렀다가 위협적인 중개사에게 끌려 석모도 산 속에 버려지는 도시의 늙은 부부 이야기('명당을 찾아서')는 신경줄이 팽팽해지다 못해 끊어져버릴 것만 같은 김숨 특유의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하다. 돈과 숫자로 명쾌하게 환원되는 인간들은 가족이라는 친밀성의 제도 속에서도 끊임없이 다그침을 당하며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을 뿐이다.
표제작 '국수'는 탈진한 독자를 위로하기 위해 작가가 차려낸 한 끼 식사 같은 소설이다. 말기암을 앓는 의붓어머니와 애증으로 심사가 복잡한 의붓딸 사이의 감정을 국수의 조리과정을 통해 풀어놓은 작품이다. "자식이 끈이더라는 말을 친구로부터 들은 적이 있어요. …혹 당신이 뽑아낸 국숫발들은 끈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자식이란 끈 대신 밀가루로 반죽을 개어 끈들을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요." 친모에게 버림받은 딸의 응어리와 불모의 몸으로 남의 자식 넷을 키워내며 한 많은 일생을 산 의붓어머니의 응어리가 끝내 뜨거운 국숫발로 풀어질 때, 국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만)의 음식이 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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