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나는 김치를 먹지 않았다.
새벽 4시, 봉사하러 왔다는 알량한 책임감이 치미는 짜증을 가까스로 누르고 졸음을 깨웠다. 노인들은 홀린 듯 예배당 가느다란 불빛 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적당히 기도 자세를 취하고 비몽사몽에 빠져들 무렵, 성가대의 새벽예배 찬송이 들려왔다.
피아노 선율은 숫제 소음이었고, 노래는 돼지 멱따는 소리였다. 손가락 하나 남지 않아 손바닥으로 건반을 꾹꾹 문지르는 피아노 연주자, 앞이 보이지 않아 가사를 제각각 달리 외워 그 심란한 반주에 저마다 맞추는 성가대원들. '이게 도대체 무슨 난장판인가.'냉정한 이성이 탄식을 마치기도 전에 생선뼈가 목에 걸리듯 잠시 숨이 멎으며 소름이 돋고 잠이 달아났다. 비정상의 극치, 날것의 불협화음은 어느덧 천상의 하모니로 다가왔다. 고가의 파이프오르간과 성악 전공자들을 내세운들 이보다 감미로울까. 눈물이 거추장스러웠다.
그날 나는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옮기는 병이 아닌 걸 알면서도 금방 고름이 배어 나올 듯한 손의 변형이 생소해(솔직히 끔찍해) 전날엔 사양했다. 손가락이 대부분 녹아버려 마디가 몇 안 남은 손으로 배추김치를 찢어준 할머니는 내 이름을 물었다. 이유는 뒤에 밝힌다.
소록도는 그런 섬이다. 얕은 도움을 주러 갔다가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깊은 깨달음을 선물 받는다. 평생 핍박과 멸시에 시달리며 살아온 한센병 환자들은 물리적 시간이 배 타고 5분 거리, 심리적 거리는 멀고 먼 뭍에서 온 사람들을 한결같이 반겼다. 5, 6년 뒤 취재를 위해 다시 찾은 섬은 타성에 물든 내게 약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새삼 일깨워줬다.
그래서 2년 뒤인 2007년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소록도 방문 소식에 감동했다. 모친의 유지 완수, 대선 경선이라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보다 가장 낮은 곳에 임하겠다는 그의 마음이 살가웠다. 그는 일일이 섬 주민들의 손을 잡아줬다고 한다. "병보다 편견이 문제"라는 말도 남겼다. 섬 주민들이 2012년 대선에서 몰표를 던진 건 어쩌면 인지상정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첫 여름휴가를 섬에서 보냈다길래 '설마 소록도'라고 언뜻 생각했지만 그는 일반인은 갈 수 없는 저도에서 추억을 곱씹었다. 그리고 섬에서 돌아와 김기춘씨 등 유신 인사들을 차례로 기용했고, 그 뒤 벌어진 일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긋지긋하다. 섬과 섬 사이는 그토록 극명한 차이가 있다. 만약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소록도에서 휴가를 보냈다면 박 대통령은 소록도를 방문한 첫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후 국정을 운영하며 "원칙보다 편견이 문제"라는 답을 얻었을지 모르겠다. 소록도 방문이 설령 이벤트에 그쳤더라도 '저도의 추억'보다 '소록도의 추억'이 훨씬 나았으리란 상상을 해본다.
그날 "왜 이름을 묻냐"고 했더니 할머니는 낡은 수첩 하나를 꺼냈다. 사람 이름들이 괴발개발 심란하게 적혀 있었다. "나를 되러(도우러) 온 이들이여, 옛날엔 다 미웠는디 인자 다 고마워, 나가 할 줄 아는 게 없응게 매일 기도라도 하제. 한 번 오고 영 안 와도 잉." 할머니의 수첩은 자신들을 멸시하던 세상을 향한 나름의 소통의 창이었는지 모른다. 그 뒤 나는 힘들 때마다 그 할머니의 기도 장면을 떠올리곤 한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네'라는 노래를 읊조리면서.
대통령의 수첩에는 무엇이 적혀있을까. 수많은 원칙을 적어두느라 편견에 휩싸인 건 아닌지 걱정이다. 밀양의 할머니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아이들, 철도 노조원들, 청소노동자, '안녕하냐'고 묻는 대학생들의 이름이 차곡차곡 적힌 수첩이면 좋으련만.
대통령의 입이라는 분의 말씀마냥 "4,800만 국민을 청와대로 불러 밥 먹이는 게" 소통은 아니다. 그저 신년엔 생각이 달라도 "힘드시죠, 기도(특정 종교를 지칭하는 건 아니다)하겠습니다"라고 다독이는 대통령을 꿈꿔본다.
다음 주에 소록도에 가보려 한다. 배추김치 한 줄기 얻어먹을 수 있으려나. 그 맛이 그립다, 가슴이 고파서.
고찬유 경제부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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