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역 고가도로 위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며 분신한 이모(41)씨가 다음날 끝내 목숨을 잃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상식적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다.
하지만 더 절망적인 대목은 이씨의 죽음을 두고 팩트를 입맛에 맞게 재단하면서까지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일부의 태도다. 불 붙은 사람 실루엣과 플래카드를 고가도로 사진에 조악하게 합성한 이미지를 누군가 인터넷에 띄워 실제 이씨의 마지막 모습인 양 유포되고 있다. 대중을 자극하려는 목적에만 치중한 기만이자 선정주의의 극치다.
일각에선 경찰이 고의적으로 이씨의 유서를 감춰 진상 규명을 방해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고인의 유서가 담긴 다이어리는 1일 새벽 경찰에 출석한 이씨의 동생이 전부 봤다.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의 '안녕하십니까'라는 글이 다이어리에 있다는 사실도 같은 날 오전 경찰이 보도자료를 통해 먼저 공개했다. 이 다이어리는 검찰 지휘를 거쳐 2일 유족에게 온전히 전달됐다. 경찰 대처가 느렸다는 지적이라면 몰라도 경찰이 고의로 진상을 은폐하려 했다고 확언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네이버가 이씨 사건에 대한 검색 순위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려 파장을 축소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그렇다. 실시간 검색 순위는 일정 시간 안에 입력되는 검색어의 양을 기준으로 자동 산출되는 것이어서 시시각각 변하는 게 보통이며, 네이버가 뻔히 드러날 조작극을 벌일 동기도 찾기 어렵다.
이씨 죽음의 파장을 축소하려 한다는 의혹 제기만큼이나, 단편적 정황을 근거로 '한 신용불량자의 죽음'으로 몰아가는 일부 언론의 행태도 문제다. 사안마다 팩트보다 진영 논리가 앞서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가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이씨가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는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이미 뚜렷하다. 구태여 허위사실이나 괴담을 덧붙이려는 것은 오히려 사건을 진흙탕에 빠뜨리는 일이자, 이씨 죽음에 대한 모욕이다.
사회부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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