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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진공관… 빛을 담은 금속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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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렌즈·진공관… 빛을 담은 금속공예

입력
2014.01.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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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 풍경을 이루는 사물 중 조명만큼 다양한 얼굴을 가진 것이 있을까. 수험생 책상 위의 스탠드는 삼파장 전구의 창백한 불빛으로 벼락치기 공부 중인 학생을 매섭게 다그치고, 침대 옆 경대에 놓인 램프의 부드러운 불빛은 버거운 일과를 끝내고 자리에 누운 이를 말 없이 위로한다.

가장 기능적이면서 동시에 조형적인 사물인 조명을 20인의 금속공예가가 디자인했다. 서울 논현동 갤러리로얄에서 열리고 있는 '빛을 내는 사물' 전에는 조명 디자인이 주업이 아니거나 생전 처음 조명을 만들어본 금속공예가들의 조명 80여점이 나왔다. 카메라, 주얼리, 주방용품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이들은 원래 조명에서 기대할 수 있는 형태와 크기, 기능을 깨끗이 지우고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사용해 빛을 담아냈다.

수제 카메라 제작자인 현광훈은 카메라 렌즈를 이용해 조명을 만들었다. 금속조형을 전공한 그는 카메라를 열광적으로 수집하다가 급기야 철을 깎고 붙여가며 카메라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물에서 반사되는 빛을 받아들여 그것을 기록하는 카메라의 메커니즘은 작가의 관심을 자연스럽게 빛으로 이끌었다. "카메라는 원래 빛을 담는 역할이잖아요. 반대로 빛을 내보내면 어떨까 생각해서 만들어 본 건데 그게 조명이 됐어요." 그가 만든 카메라 조명은 렌즈 안에 광원을 넣어 그 빛을 벽에 투사하는 방식이다. 렌즈 조리개는 실제로 작동해 빛의 크기나 모양을 조절할 수도 있다.

금속 주얼리와 설치미술 작업을 주로 하는 김재현은 진공관 앰프에 쓰는 유리 조형물 안에 조명을 집어 넣었다. 유리관 안에는 작가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로봇이나 태엽의 모양을 본떠 만든 철 조각들이 덩어리져 붙어 있다. 차가운 금속 조각들은 어린 주인에게 버려진 장난감처럼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내뿜지만 그 안에 숨겨진 램프가 켜지는 순간 따뜻한 생기를 되찾는다. "카세트테이프나 삐삐처럼 이제는 사라진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진공관 앰프도 30대 중반 아래로는 거의 모르는 것 같아요. 이 조명을 보면서 세대 간에 이야깃거리가 도출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작가가 이 조명에 붙인 제목은 'obsolete words' 번역하면 퇴어 즉 퇴화한 언어라는 뜻이다.

이상민 작가는 지난해를 마지막으로 퇴출된 백열등을 부활시켰다. LED 조명에 비해 효율이 낮고 수명도 짧아 새해부터 생산이 금지됐지만 작가에게 조명은 빛을 내는 순간에만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었다. 전구의 수명이 끝난 순간의 짜증, 아버지와 함께 들렀던 전구 가게의 풍경, 전구를 갈아 끼우기 위해 끌어오는 의자, 전구를 교체하는 아버지를 아래에서 올려다봤던 경험들. 간결한 형태가 돋보이는 이 조명은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쫓겨난 백열등에 대한 끈끈한 옹호다.

공예가들의 추억과 주장이 담긴 이색 조명들은 2월 9일까지 전시된다. 전시장에서 직접 구매도 가능하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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