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어제 취임 후 한번도 하지 않은 기자회견을 자청, "개각은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새해 벽두부터 나온 개각설을 잠재우기 위해서였다. 타이밍은 적절했다. 개각설이 나돌면 대부분 공직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일손을 놓기 마련인데, 이런 불확실성을 정리해줄 필요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지금 개각을 단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 실장 설명대로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야 하고, 불안정한 북한과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안보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 또한 연초 부처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고,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이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장관들을 바꾸는 것은 적절치 않은 측면이 있다. 인사청문회 절차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렇다고 개각 요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인정하지 않는 경제부총리, 철도 파업이 벌어졌는데도 존재감조차 없는 노동부 장관, 부처 내부에서도 권위가 서지 않는 해양수산부 장관, 검찰 내부 갈등을 자초한 법무부 장관, 존재감이 없는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등에 대해선 교체 여론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 집권 2년 차를 맞아 내각 분위기를 일신하려면 문제 장관들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도 상존하고 있다.
일단 김 실장의 분명한 언급으로 개각은 상당기간 없을 전망이다. 사실 개각을 하느냐 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권한을 주지 않고 책임만 묻는 풍토와 내각 운용 시스템을 개선하는 문제다.
이명박 정부 시절 실세 장관이 아니면 산하기관장은 물론 실ㆍ국장 인사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사실상 부처 인사를 좌지우지했다. 고위직 공무원들은 장관의 신임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실세 정치인이나 청와대에 줄을 대느라 온 힘을 쏟았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있다. 김 실장이 회견에서 자기 할 말만 하고 질문도 받지 않는 태도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이런 왜곡된 구조와 풍토에서는 소신 있는 장관, 기강이 바로 선 부처, 힘 있는 정책 추진을 기대하기 힘들다. 장관이 소신 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장관제 정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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