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모 시중은행 본점.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예금보험공사의 공동검사가 한창이었다. 금감원 팀은 이 건물 A층, 한은 팀은 B층, 예보는 C층에 자리잡았다. 규모는 각 기관에서 나온 팀장 3명에 팀원까지 30명 안팎에 달했다.
각 검사 팀은 은행에 같은 자료를 요구하기도, 서로 다른 자료를 달라기도 했다. 은행의 관련 부서는 3번씩이나 같은 일을 하거나, 각 팀이 요구하는 서로 다른 자료를 대려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느라 일상 업무를 뒷전으로 미뤘다. 은행 관계자는 "말이 공동검사지 실제는 따로따로 동시검사"라고 토로했다.
검사기관과 금융회사의 유착 등을 방지하고 검사기관간 전문성을 바탕으로 유기적인 협조 체제를 구축한다는 취지의 금융회사 공동검사제가 파행 운영되고 있다. 검사기관간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지만, 검사를 받는 금융회사들의 부담만 가중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실효성은 없고 시간과 인력만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공동검사제도는 도입 취지와는 무관한 조직이기주의로 운영되고 있다. 검사기관인 금감원과 한은 예보 등이 제각각 검사 팀을 파견하고 있지만, 기관간 교류가 전혀 없어 중복검사가 비일비재하다는 것.
여기에 고유 검사영역 이외의 자료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해당 금융회사들은 냉가슴을 앓고 있다. 예컨대 금감원이 검사 기간을 연장하면 굳이 연장할 필요가 없는 다른 기관도 연장했다. 기관간 교류라고 해봐야 고작 보고서 최종 작성 단계에서만 각자 검사한 내용을 집어넣느냐, 마느냐로 공문을 교환하는 것뿐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시각이다.
한은, 금감원간 공동검사제는 여러 차례 조직 알력다툼을 벌이다 저축은행 사태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저축은행간 유착의혹이 제기되면서 2011년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듬해 7개 은행에 대한 가계 및 중소기업 부채 실태 파악 검사를 시작으로 최근 동양증권 검사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금융권에선 여론에 떠밀려, 조직간 권한 쪼개기로 만들어진 제도가 파행을 겪는 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각자 원하는 자료만 보고 교류가 없으니 결과물이 좋을 리 없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동양사태만 봐도 2011년 예보와의 공동검사 후 제기된 불완전판매에 대한 금융당국의 뒤늦은 조치, 공동검사 요구권을 가진 한은에 대한 직무유기 비판이 나오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 와중에 검사기관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는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기구(금융소비자원)를 분리해 검사권과 제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금융감독체계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선진화 방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감원, 한은, 예보에 이어 금융소비자원 검사 팀까지 한 금융회사에서 제각각 검사를 펼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금융권은 "시어머니만 늘어난다"고 반발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금융수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금융소비자원 설립으로 금융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융회사 관계자는 "검사팀장을 각 기관이 돌아가면서 맡아 한 개의 팀으로 운영하는 등 의미 그대로의 공동검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이 금융소비자원 설립과 함께 덧붙였다는 '금융회사 수검 부담 완화'는 양립불가능 하다"고 꼬집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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