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송 프로그램에 나오는 외국인은 과거에 비해 다채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예전 한창 인기 있었던 로버트 할리에 이어 최근 '진짜 사나이', '마녀사냥' 등으로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돌풍을 일으킨 샘 해밍턴 같은 연예인들. 또 이주노동자 가족상봉기와 결혼이주여성 한국 정착기에 나오는 주인공들부터 지역 라디오의 국가별 방송 진행자 등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다문화ㆍ다인종 시대의 일면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현재 국내 결혼이민자는 15만 명에 이르고, 이미 한국인이 된 귀화자를 합치면 22만 명을 넘고 있다. 여기에 18만여 명에 이르는 2세들까지 합치면 다문화가정 인구는 40만 명에 달한다. 이주노동자 등 각계각층 외국인까지 합치면 국내 거주 외국인 수는 140만 명을 넘어서 우리나라 거주민 100명 가운데 외국인은 평균 3명이나 된다.
그러나 통계적 수치는 방송에서 묘사되는 외국인의 모습만큼이나 다문화사회 한국의 모습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한다. 많은 방송 프로그램들은 출연하는 외국인이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얼마나 한국인의 생활습관이나 행동양식에 잘 적응하는지, 더 나아가 얼마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다운지'에 대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묘사가 불편하지 않게 시청될 수 있다는 것은 이주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지나치게 독단적이고 일방적이 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는다. 한국적인 생활양식이나 문화에 이방인들은 응당 녹아 들어야 하고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고착화시킬 것 같아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일방적 혹은 시혜적 관점에서 이주민의 적응과 동질화를 지나치게 강조해 온 기존 다문화정책의 한계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단면적이고 일방적인 관점의 정책은 우리사회에서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나 다양한 ???양식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평화로운 공동체를 가꿔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위축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문화다양성 정책은 다소 왜곡된 우리의 다문화 상황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데 적절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화다양성 정책은 유입 이주인구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 정책의 외연을 넓혀 모든 사회구성원이 각자에게 미치는 문화적 다양성의 영향을 보다 구체적으로 느끼면서 논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얼마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지원으로 성북문화재단에서 개최한 '심연향연'이라는 행사는 이 같은 시도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성북구 지역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한 문화의 흔적들을 찾아 다름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이주민, 유학생 예술가, 장애인 아티스트, 지역주민이 만나 음악으로 즐기고, 전시로 말하고, 이야기로 소통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잘 그려냈다.
성숙한 다문화사회의 시민의식은 상대방 문화를 존중하는 가운데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습득하는 것이다. 문화다양성 정책은 다양한 문화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우리 모두가 세계시민으로서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수용력을 키워나가는 범 국민적 정책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문화의 발현과 교류는 더 이상 이주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한류의 세계적인 확산과 더불어 국내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문화다양성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한류가 다른 나라의 문화정체성을 잠식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명하기 위해서도 문화다양성에 대한 노력이 다각도로 요청되고 있다. 때문에 정부는 물론 민간에서도 국내에 존재하는 문화적 다양성의 자원발굴과 활용, 선진국만이 아닌 다양한 문화권과의 문화교류 활성화, 문화분야의 국제협력 등을 더욱 활발하게 할 필요가 있다. "로마인들이 뛰어났던 것은 그들이 지녔던 개방적 성향 때문" 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다양한 문화와 삶의 양식을 포용하고 이를 자신의 역량으로 전환시켰던 세계 역사의 경험을 이젠 되새겨볼 시점이다.
홍기원 숙명여자대 정책ㆍ 산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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