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압도하는 붉은 캔버스는 생 피를 가득 따른 와인 잔을 앞에 둔 듯 시종일관 가슴을 뛰게 한다. 생명의 색 레드에 대한 배우들의 언쟁 속으로 귀를 기울이면 뱀파이어와의 식탁에 앉아 그가 찬양하는 피의 생명력에 감탄하면서도 끝내 잔을 비우지 못하는 겁쟁이 인간이 된 것처럼 겸연쩍다. 2010년 토니상 최다 수상작으로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마크 로스코의 일화를 극화한 연극 ‘레드’(존 로건 작ㆍ김태훈 연출)는 다양한 미술작품과 예술사에 대한 논쟁을 앞세우지만 단연 생명의 출발과 쇠락에 대한, 세대갈등과 같은 모두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26일까지 공연하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는 한 치의 자연광의 틈입도 용서치 않았던 로스코의 동굴 같은 화실을 재현하기에 제격이었다. 레드라는 색(정확히 붉은색이라 말할 수 없는)의 원질을 탐했던 로스코의 화실은 무대 디자이너 여신동의 손길을 거쳐 다양한 미술도구들이 풍기는 눅진한 냄새와 연신 피워대던 담배 향, 싸구려 중국 음식 냄새, 거대한 캔버스들의 집합체로 완성됐다. 2011년 국내 초연 당시 로스코를 맡았던 배우 강신일이 재차 무대에 섰고 로스코와 그림의 의미, 인생의 바통터치를 논하는 조수 켄은 강필석과 한지상이 더블캐스팅으로 연기한다.
연극 ‘레드’에서 레드는 로스코가 천착한 색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그의 젊음이고 생명의 이유다. 로스코는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였다는 말로 늙음을 안타까워한다. 생명의 상징인 레드, 죽음의 표상인 블랙이 캔버스 위 물감들처럼 선명하게 객석에 뿌려진다.
어린 시절 부모가 살해된 기억에 붙잡혀있는 켄은 반대로 화이트를 꺼린다. 하얀 침대 시트에 흥건했던 부모의 선혈에 대한 생각은 젊음의 상징인 화이트에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죽어가면서 오히려 레드에 집착했다는 앙리 마티스에 대한 로스코의 언급은 꺼져가는 인생을, 사라져가는 명성을 붙잡고 싶어하는 인간 공통의 욕망을 대변한다.
생명과 젊음이 수그러짐에 대한 아쉬움과 집착은 필연적으로 세대간 문제를 낳는다. 죽어가지 않는 노인, 유행을 물려주지 않는 미술사조는 살아내야 하는 젊은이, 로스코 대신 갤러리에 걸려야 하는 앤디 워홀과 투쟁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 새로운 사조를 ‘비즈니스’라 경멸하고 끝없이 “예술은 이래야 한다”고 말하는 로스코는 구세대이면서 아버지다. “아버지는 존경하지만 살해하고 몰아내야 하는 존재”라 말하는 로스코에 끄덕이고 늙은 사자의 포효에 항거하는 켄은 신세대이고 아들이다.
하지만 극은 세대간의 갈등, 블랙에 먹히는 레드의 필연으로 몰아가지 않는다.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라고 켄을 해고하는 로스코는 그의 심장에 손을 얹고 인사한다. 생명의 표상인 레드로 거대한 캔버스에 밑칠을 함께한 후 숨을 헐떡이는 두 남자는 갈등 대신 화합을 보여준다. 삶의 먹먹함에 옆자리 관객들이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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