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이 동북아 지역의 주도권을 놓고 팽팽히 맞서는 미국과 중국에 막혀 좀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31일 지난해 1년간의 남북관계를 "대결 국면이 구조적으로 고착화한 가운데 간헐적 대화 국면이 혼재하는 복합구도"라고 규정했다.
현 정부는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대북 정책의 패러다임으로 내걸었지만, 구체 방안은 정권이 출범한 뒤 6개월이 흐른 지난해 8월말에야 나왔다. 통상 정권 초부터 공세적 대북 정책을 국정운영의 동력으로 삼던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행보였다. 박근혜 정부의 신중 모드는 정권 출범 직전 터진 북한의 3차 핵실험 때문이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과 전쟁 위협으로 인해 남북간 대결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평화 공존을 모색하는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2013년 이후 전개된 한반도 정세는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고 출범한 문민정부 초기와 곧잘 비교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전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성과를 이어받아 남북간 협력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려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된 '1차 북핵 위기'는 임기 내내 문민정부의 발목을 잡았고, 끝내 '핵 딜레마'를 풀지 못했다.
2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북한 핵문제는 남북관계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전직 통일부 고위 관료는 "북핵 문제가 20년간 지속되면서 북한이 핵실험 징후만 보여도 전 세계가 눈을 부릅뜨는 국제적 논란이 됐다"며 "남북관계는 이제 북핵의 종속변수로 축소됐다"고 진단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북핵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대한 오랜 고민의 산물이다. 참여정부의 '평화ㆍ번영정책'은 북한의 내재적 변화와 그에 따른 화해ㆍ협력을 남북 관계의 모토로 삼았으나,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이 보여주듯이 북한의 핵 도발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거꾸로 '비핵ㆍ개방 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북한이 극렬 반발하는 비핵화를 전면에 내세운 탓에 임기 내내 남북관계가 동면기를 맞게 했다.
박 대통령이 거창한 구호 대신 '신뢰'를 남북 관계에 앞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의 핵보유는 인정하지 않지만, 한반도 정세 변화와 상관없이 인도적 대북지원을 통해 개선의 여지를 남겨두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통일부는 지난달 30일에도 민간단체 2곳의 대북 물자 반출을 승인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압박과 대화, 어느 방식으로 접근하든 북한에 명확한 메시지를 준 점은 한반도신뢰프로세스의 성과"라며 "정부가 개성공단 정상화에 합의한 것도 정책 차원에서 합리적 판단을 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문제는 상대방인 북한이 신뢰에 반응하지 않을 경우 이 신뢰프로세스도 상황 관리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특히 장성택 숙청을 계기로 북한 내부의 체제 불안까지 겹치면서 2014년 남북관계는 더욱 방향을 가늠키 어렵게 됐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은 저강도 위기를 조성한 이후에는 반드시 대화 공세로 나섰다"며 "정부가 내년 상반기께로 예상되는 북한의 유화공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남북관계의 풍향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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