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조상 욕보였으니 일이 꼬이는 것은 당연”
스님들이 동안거나 하안거를 할 때 묵언수행을 하듯이 무속인들도 명산대찰을 찾아 수행정진 기도할 때는 점을 보지 않고 말도 아낀다. 그런데 지난 여름엔 산골서 기도정진하고 있는데 그곳의 지인이 하도 부탁해서 점을 보았다.
수시로 신세를 지는 은인의 부탁이라 거절도 할 수 없었고, 점을 볼 사람의 딱한 사정이 관례를 깨게 만들었다.
점을 볼 사람은 그곳의 덕망 있는 유지의 장손으로 태어났으나 30여 년 동안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문전옥답은 다 팔아먹었고, 결혼도 세 차례나 실패했다고 해서 도와주고 싶었다.
나의 이러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약속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게 왔다. 그것도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인사는 건성으로 하고 자기 할 말만 열심히 했다. 자신은 착하게 열심히 살았지만 운이 없어 망했다며 변명만 늘어놓았다.
변명이 계속되자 이 신사를 처음 보는 순간 유난히 눈에 띄던 넥타이를 잡아당기고 싶은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장군님께 청문하고 답을 기다리는 순간 나는 신사의 넥타이를 잡고 벼락과 같은 일성이 터졌다.
“선한 조상을 욕보이는 놈이 조상 탓을 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야~이 놈아! 이 여자 저 여자 마구 찝쩍거리고, 개는 나무에 매달아 놓고 잔인하게 잡아먹었지? 이게 다 착한 조상 욕보인 것이니 일마다 꼬이는 것은 당연하지.”
공수를 하면서 넥타이를 잡았더니 신사는 질질 끌려왔다. 방안을 몇 바퀴 돌자 신사는 잘못을 했다며 빌었다.
못난 사람들이 ‘잘되면 내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 한다. 이 신사가 잘못된 것은 조상 탓이 맞다. 그것은 정신 차리라는 조상의 벌인 것이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조상과 후손이 이렇게 홍역을 치르고 나면 새로운 심리적 관계가 정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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