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설문조사에서 박근혜정부 1년 이후 삶의 조건이 나빠졌다는 목소리를 가장 높인 것은 40대였다. 지난해 대선 때만 해도 합리적 보수 정권의 면모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지만, 각종 개혁 공약이 후퇴하고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실망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일보가 올해 초 신년기획으로 조사한 국민 행복의 5대 조건이 얼마나 개선됐다고 보냐는 질문에 40대는 전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사회 양극화 및 빈부격차해소는 40대 응답자(351명)의 70.09%가 "이전보다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57.55%)과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통한 주거안정(52.42%), 비정규직의 정규직화(54.13%) 항목도 지난 1년 동안 현상유지는커녕 도리어 후퇴했다는 의견이 평균을 웃돌았다.
이 같은 40대의 불만에 대해 전문가들은 "박근혜정부가 급격하게 보수본색을 드러내는 데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면서 분노하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40대는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는 측면에서 분명 박 대통령의 우군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나 복지 확대, 국민통합 등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공약을 내세워 40대 표심을 얻었다. 정치컨설팅 '민'의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에 대한 40대의 지지율은 66%였는데 지난해 대선에서는 문재인 후보 지지가 55.6%로 떨어졌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중도로 외연을 넓혔기에 믿어보자는 심정으로 찍어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초연금과 경제민주화 등 대표적 개혁 공약이 대폭 손질되거나 뒷전으로 밀려나고 공안 정국 조성 등 우편향하는 모습에 집권 1년만에 등을 돌렸다는 평가다.
특히 40대는 남은 4년 동안의 행복의 조건에서도 상당히 정치적인 목소리를 냈다. 국정원 군 등 국가기관의 정치개입 근절(51%)에 대한 요구가 20대(29.55%)와 30대(44.26%)보다 월등히 높았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민주주의를 쟁취한 경험을 공유한 40대의 세대적 배경을 그 이유로 꼽았다. 386세대로서 직접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보고 들은 40대는 국가기관이 동원돼 선거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고 수사 축소 의혹이 불거지는 현 시국을 민주주의 가치의 훼손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40대가 부유층에 대한 증세로 안정적인 복지재원 마련(61.54%)을 현 정부에게 바라는 첫 번째 요구사항으로 꼽은 것도 보편적 복지와 분배 정의 등 진보적 가치에 목소리를 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다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지금의 40대는 경제적 풍요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황태자 세대로, 외환위기 이후 위 아래 세대에 끼여 치이다 보니 기득권을 겨냥해 증세를 요구하는 것이지 막상 자신에게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전 계층에 걸친 보편적 증세를 감당하겠다는 40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40대가 요구하는 정치 사회적 목소리에 박근혜정부가 제때 응답하지 않으면 국정운영이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배 본부장은 "50대 초중반의 경우 40대와 비슷한 세대적 감수성을 갖고 있는 만큼 40대의 불만 여론이 50대로 전이 돼 4050 벨트를 형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윤주기자 k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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