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이 란에 당선자 신분이었던 대통령님께 편지를 썼는데 올해 마지막 날 이 컬럼을 또 제가 쓰게 됐습니다. 올 한해 얼마나 노고가 크셨습니까. 한 해를 보내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대통령만 안녕한 한 해였다"같은 속 모르는 소리는 거두겠습니다. "'명박산성'과 '근혜차벽'은 뭐가 달라?", "같은 팀 선수끼리 바통 주고받는 400m 계주인가?"같은 항간의 말들 혹 듣고 계시는지요. 'MB정권 시즌2' 식의 쑥덕거림엔 결코 동의하지 않으실 겁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진영을 떠나서 상당 수 사람들이 '뭐가 달라졌는지 도통 모르겠다'고들 하네요.
저는 현 상황을 '소프트파워 대 하드파워의 충돌'이라 생각합니다. 전체주의 대 다원주의, 권위주의 대 민주주의라 해도 무방합니다.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대자보 얘기는 들으셨겠지요. 스펙전쟁에 내몰려 현실에는 도무지 관심없어 보이던 학생들이 낮은 목소리로 소프트파워를 보여줬고,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그러던 중 터진 경찰의 민주노총 진압은 급기야 대통령퇴진요구까지 촉발시켰습니다.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로 질적 변환을 하는 듯 합니다. 엊그제 28일은 몹시도 추웠죠. 서울시청광장에 나가봤습니다. 대자보물결 탓인지 20대 젊은이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신호등 앞에 잠시 서있기도 추웠던 그날, 경찰 추산으로도 2만5,000명이 왜 서너 시간씩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웠을까요.
"저항세력과의 불통은 당연하다"고 청와대 홍보수석이 말했습니다. 그 발언, 든든하고 흐뭇하셨습니까. 저는 대통령 측근 중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경악했습니다. 대통령직선제 사상 첫 과반 대통령이십니다.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지요. 그런데 승리하신 분께서 왜 편을 가르려 하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정치학에서 말하는 '두 국민 전략'을 택했다고는 설마 믿고싶지 않습니다. 바둑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곤마(困馬)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쫓기거나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국을 일컫습니다. 형세 좋게 시작할 수 있었던 바둑판이었는데, 왜 곤마가 돼버렸을까요. 중요하기 그지 없는 집권 첫해를 돌아보매, 가계부채나 복지 등 약속하신 주요 정책이나 국민통합 차원에서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데, 제 기억력이 신통찮아서겠지요? "나를 믿고 따르라"와, "뭘 어떻게 믿으란 거냐"라는 일방통행 뿐이었습니다. 불통에 대한 실망감과 피로감이 누적된 나머지 하야 같은 험악한 말이 나왔다고 보는데, 혹시 극소수 의견이니 별거 아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닌지요.
저는 지난 대선 중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불법행위에 적어도 대통령님은 무관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런 '짓거리'를 보고받을 겨를 조차 없으셨을 겁니다. 그렇지만 불법행위가 있었던 건 사실 아닙니까. 그 불법행위에 대해 현 국정최고책임자로서 진상을 규명토록 보장해주고, 재발방지책을 만드는 게 당연한 책무 아닌지요. 청와대와 정치권이 다투는 사이 상황은 악화일로였고, 마침내 "호미로 막을 것 가래로도…" 운운하게 까지 돼버렸습니다.
내일이면 새정부 2년차가 시작됩니다. 얽힌 실타래를 혼자서 풀으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해결의 핵심고리를 대통령님께서 쥐고 계시다는 것에 아직도 동의 못하시나요? 지난 정권 때 저질러진 일을 정리하지 못한 채 정통성 시비로 지샌다면, 우리는 자신의 오물도 스스로 못치우는 3류국가, 3등국민일 수 밖에 없습니다. 팩트는 하나고 진리 역시 하나이듯, 대통령님의 '법과 원칙'이 국민들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라 믿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법은 하나이고, 만인 앞에 평등하니까요.
'불통'이라는 말만 들어도 속상하시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왜 한뎃잠을 자고, 혹한에도 광장을 메우는지 생각하셔야 합니다. 파지 리어카를 끌고 석양녘 비탈길을 오르는 어르신들을 놔둔 채 네탓 공방으로 지새는 건 죄악입니다. 부디, 내일부터 열리는 새해가 사람사는 세상으로 향하는 원년이길 바랍니다.
이강윤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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