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뿔차를 마셨다. 사슴이 꾸는 꿈의 색깔이 우러나온 차였다. 지난 밤 꿈 얘기다. 남편에게 들려주었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럼 천연색 꿈이었겠네?" "어…보라색 비슷하긴 했는데…" 색깔을 묘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는 사슴뿔차 대신 진홍색 오미자차를 마시며 서로의 꿈을 주섬주섬 나눠 보기 시작했다. 어떤 꿈은 표정이 생생했고 어떤 꿈은 감정이 철철 넘쳤다. 대개는 색깔이 없었다. "꿈은 그럼 보통 흑백인가?" "글쎄. 흑백이라 하면 뭔가 좀 억울한데." "하긴. 사슴뿔차 색깔도 천연색이라 하긴 좀 그랬어." 머릿속에는 가시광선이 들지 않기 때문일까. 색깔이 없는 꿈도 모노톤은 아니고 색깔이 있는 꿈도 컬러톤은 아니라며 우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박쥐는 사람의 귀에 들리지 않는 초음파를 감지할 수 있다던가. 박쥐의 초음파처럼 우리의 꿈은 어쩌면 '초색깔'로 이루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과학은 꿈을 거창하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꿈이란 뇌에 저장된 뭇 정보가 렘수면 기간에 뒤죽박죽 섞여 만들어진 무의미한 영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뭐 어떤가. 뒤죽박죽이든 무작위든, 깨어있는 정신과 감각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꿈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의미하고 영험하다. 새해는 청마의 해라 한다. 푸른 말처럼 신비롭고 상서로운 꿈을 많이 꿀 수 있는 한 해면 좋겠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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