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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30일] 수단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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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12월 30일] 수단의 비극

입력
2013.12.2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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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수단 다르푸르에서 기독교계 흑인 원주민들이 무장봉기했다. 정권을 장악한 아랍계 이슬람 정부의 뿌리 깊은 학대와 차별에 항의해서다. 정부는 민병대를 동원해 부녀자와 아이까지 강간, 살해하는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 3년여 동안 무려 30만 명이 희생됐다. 2006년 평화협정으로 끔찍한 내전은 일단 멈췄지만, 독립 이전부터 계속돼 온 북부 수단 정부의 이슬람 정책은 바뀌지 않았다.

■ 2011년 흑인들이 '남수단'으로 분리 독립한 것은 이런 차별에 대한 오랜 저항의 결과다. '검은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인 수단이 마침내 남쪽에서 흑인 독립국가를 이루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했다. 석유의 70%가 남쪽에 매장돼 있지만 송유관과 항구 등 기반시설이 북부에 집중, 아랍계 정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이 각각 대표하는 딩카족과 누에르족의 권력투쟁, 석유 이권 다툼으로 내전이 재발했다. 다르푸르 사태 못지 않은 참혹한 학살극이 재연, 지금까지 최소 500명이 희생됐다.

■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이 서방과의 '성전(聖戰)'을 위해 테러 캠프를 차린 첫 근거지가 수단이다. 그는 사우디 정부가 90년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미군에 기지를 제공하자 "사우디가 사탄에 오염됐다"며 조국을 영영 등졌다. 이후 수단에 4년 간 머물면서 알 카에다를 본격적 테러조직으로 키웠다. 93년에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를 배후 조종했다.

■ 19세기 초 수단을 침략해 속국화한 이집트의 오토만 제국은 철저한 이슬람 통치로 비극의 씨앗을 뿌렸다. 19세기 말 영국은 아스완 댐의 젖줄인 나일강을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수단을 식민지로 삼았다. 남부 수단에 기독교와 영어를 전파하면서 투자는 북부에 집중했다. 이집트의 기득권을 인정해 북부 이슬람 정권을 지지하는 분리통치로 남북 분열과 갈등을 키웠다. 그 영국과 이집트가 지금 남수단 유엔 평화유지군(PKF)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이들이 평화활동으로 원죄를 씻게 될까.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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