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Cover Story] '만년 2인자' JP, 격동의 시대 이면 끝내 입 안 열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Cover Story] '만년 2인자' JP, 격동의 시대 이면 끝내 입 안 열까

입력
2013.12.27 19:03
0 0

"거짓말에는 적극적으로 꾸미는 것과 소극적으로 은폐하는 것이 있다. 회고록의 측면에서는 후자가 더 나쁘다. 꾸며낸 것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지만 덮어버린 것은 영원히 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 가장 안타까운 건 당사자가 아무 말도 않고 사망해버리는 경우다" 신복룡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의 말이다. 정치ㆍ역사 학자 등 전문가 26명에게 한국 현대사의 주요 공적 인물 중 회고록을 남기지 않고 사망해 아쉬운 인물, 회고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생존 인물을 꼽아달라고 했다. 각각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가 첫 손가락에 꼽혔다.

회고록 썼어야 하는 인물들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회고록을 남길 기회가 없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은 이는 10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1963년 책 에서 5ㆍ16 쿠데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지만 1970년대에 대해서는 회고록을 남기지 못했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옳고 그름을 떠나 어디까지가 그의 철학이었고 어디까지가 임기응변이었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혈서를 써서 만주 군관학교에 지원할 때와 일본군 장교시절의 생각, 해방 후 남로당 간부가 된 과정 등에 대해 본인의 얘기를 듣고 싶다"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거론한 이는 7명이었다. 정해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1950년대는 기록도 별로 없고 개인통치적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있으면 당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승만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방 전까지 미국에서 활동하던 시기 이승만 전 대통령이 남긴 미공개 일기를 확보해 분석하고 있다. 그를 재조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을 꼽은 전문가도 6명이었다. 김형욱씨와 대조적으로 그는 김대중 납치사건 등 박정희 정권 시절 공작정치의 이면, 7ㆍ4 남북공동성명의 비사 등에 대해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신복룡 교수는 "밀사는 진실을 가슴에 안고 간다고 한 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사후 공개를 조건으로라도 기록을 남겼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 6명이 최규하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그는 회고록을 못 남긴 게 아니라 안 남겼다. 1979년 10ㆍ26 직후 과도기에 정권을 맡았던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와 자신의 관계에 끝까지 침묵했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한 시대의 결정적 순간은 설령 그것이 개인으로선 부끄러운 일이라도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고 했다. 한 역사학자는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내용이 없었던 게 최규하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낸 유고집이다. 취할 게 하나도 없었다"며 답답해했다.

이 밖에 이승만 정권시절 사형 당한 조봉암 진보당 당수(3명), 아웅산 테러 때 사망한 함병춘 전 주미대사(2명), 월북한 박헌영 남로당 당수(2명), 포항제철을 일군 박태준 전 총리(2명) 등이 회고록을 남기지 않아 아쉬운 인물로 꼽혔다.

앞으로 써야 할 사람들

전문가 중 압도적 다수인 20명이 회고록을 기대하는 인물로 김종필 전 총리를 꼽았다. 1961년 5ㆍ16 쿠데타를 주도한 그는 '킹메이커''만년 2인자'라는 별칭처럼 40여년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었다. 강규형 명지대 기록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정치사에 그렇게 많은 중요한 순간에 그렇게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이 없다. 항상 1인자와 긴장관계에 있는 2인자로서 시대의 이면을 살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총리는 10일 국회를 찾아 "회고록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운영 전 자민련 대변인은 "주변에서 회고록 권유를 많이 한다. 특별히 이유를 들은 적은 없지만 쓰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말씀도 편하게 하시고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그의 정치적 생애에 동의하냐를 떠나서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양식과 지성을 갖춘 이로 가장 적절한 자서전 집필자"라고 평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지목한 전문가는 5명이었다. 한 역사학자는 "돌아가시기 전에 광주 영령과 역사 앞에 사죄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6ㆍ29 선언에 대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자신이 주도했다고 밝혔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 쪽의 입장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서관을 지낸 민정기씨는 "오래 전부터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으니 내기는 낼 것"이라며 "평생을 기록한 것이니까 분량이 많다"고 말했다.

박지원 의원, 권노갑 전 의원, 김덕룡 전 의원을 꼽은 전문가도 3명씩 있었다. 박 의원에게는 남북정상회담에 얽힌 뒷얘기와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진술을 기대했는데, 현실 정치를 떠난 후에 회고록을 쓰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권 전 의원과 김 전 의원은 각각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의 맏형으로서 나름의 시각으로 본 정치사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고 岺?杉?

또 2명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삶에 대해 후일 회고록을 남겨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박관용 전 의원(2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2명), 한국 진보정당의 간판인 권영길 전 의원(2명),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5공화국과 김대중 정권에 참여한 이종찬 전 국정원장(1명), 제3세력을 추구했던 박찬종 전 의원(1명) 등도 거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꼽은 이도 1명이었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이건희 삼성 회장(2명)과 김우창 고려대 영문학과 명예교수(1명)의 회고록을 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