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가 올해 고교 2학년생이 치르는 201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문과생에게도 의학계열의 지원을 허용하기로 했던 방침을 한달 반 만에 뒤집었다. 하지만 대입전형안 시행을 유예하면서 구체적인 기한은 밝히지 않아 수험생의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서울대는 27일 임시학사위원회를 열어 논의한 끝에 "입학정책위원회, 학사위원회 등을 거쳐 입시제도의 급격한 변화가 초ㆍ중등 교육현장과 수험생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수의예과, 의예과, 치의학과에 문ㆍ이과 교차지원을 허용하는 입시안의 2015학년도 시행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14일 "창의적 인재를 요구하는 융합학문의 시대 정신에 부합하기 위해 학생의 선택권을 넓혔다"며 문ㆍ이과 교차지원 확대안을 발표했지만 이달 1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재고를 요청하자 44일 만에 번복한 것이다.
박재현 서울대 입학본부장은 "철회가 아니라 유예"라면서도 유예 기한에 대해서는 "추후 교육 여건과 사회 환경을 고려하여 결정하기로 했다"며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로써 내년 서울대 입시에서 의학계열은 현행대로 고등학교에서 자연계열을 선택해 이과 수학을 배우고,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수학B와 과학탐구 영역을 선택한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
서울대는 수험생의 혼란을 이유로 들며 시행을 뒤집었지만, 교육현장은 되레 또 한번 출렁이게 됐다. 지난 달 서울대의 발표 후 있었던 외국어고의 원서접수에서 서울지역 외고 6곳의 경쟁률(일반전형)이 4년 만에 올라 2.1 대 1을 기록했었다. 문과생에게도 서울대 의대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림으로써 문과생 중 최우수 학생을 배출하는 외고의 인기가 상승한 것이다. 임성호 하늘교육 대표이사는 "서울대의 발표로 외고 진학이나 문ㆍ이과 선택에 영향을 받았던 중ㆍ고생들은 이번 번복으로 피해를 보게 된 것"이라며 "서울대가 간판을 이용해 교육현장을 흔들고 대학의 입시전형 신뢰도에도 큰 흠집을 냈다"고 말했다. 대교협의 요청을 수용한 것이긴 하지만 애초에 서울대가 신중하지 못한 발표를 했다는 비난도 듣게 됐다.
서울대가 유예 기한을 못박지 않은 점도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 평가이사는 "서울대 입장에서는 내년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여지를 두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명확히 시행 여부를 밝히지 않은 건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서울대가 꺼내든 교차지원 확대 카드가 교육부가 추진중인 고교 문ㆍ이과 융합교육을 공론화하는 데 물꼬를 튼 계기가 됐다는 게 교육계의 평가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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