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쯤이면 감자꽃스튜디오와 마을은 조용한 가운데에 분주하다. 그것은 매년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에 벌어지는 송년 잔치'성탄극장' 때문이다. 극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으레 먹고 마시는 파티가 아니라 공연이 중심이 된 송년회다. 그렇다고 전문 예술가나 연예인을 초청해서 관람을 즐기는 방식은 아니다. 성탄절이니 의례적으로 하는 교회행사만도 아니다. 모두가 다 같이 출연자이자 관객이고 스태프와 자원봉사자인 일종의 마을 송년축제이다.
어스름해지는 저녁 감자꽃스튜디오로 주민들이 속속 모이면 귀여운 아이들 율동을 시작으로 듬직한 청소년들의 밴드연주, 부녀회와 어르신들의 춤과 민요, 재주 있는 주민의 악기연주, 가장 안 움직인다는 중장년 남성들의 포복절도 단막극에 올해에는 아크로바틱게임과 유튜브 동영상까지 나왔다. 매년 하는 일이니 밑천이 바닥날 만도 한데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실로 다양하다. 그리고 사이사이 이어지는 퀴즈쇼에는 어떻게든 정답을 맞혀 상품을 타 보려는 사람들의 절박한 외침에 남녀노소가 없다. 사회를 보는 읍내 광고회사 사장님은 일 년 중 이때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재밌는 퀴즈를 개발하고, 사람들이 답을 몰라 난감해하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평소 술상이 빠질 일이 없던 시골의 잔치이지만 이날만큼은 예외다. 차린 메뉴는 떡볶이와 뜨끈한 어묵탕에 협찬받은 귤 한 상자가 전부이지만 무한 리필에 부족함이 없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달려와 자원봉사를 해 주는 바리스타들의 원두커피까지 등장하니 인기 폭발이다. 술 없이도 이렇게 즐거이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폭소와 감동으로 가득하다. 앞장서는 연출자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변변한 진행표 하나 없지만, 척척 돌아간다. 감자꽃스튜디오는 의자 깔고 장비 준비하고 불만 켰다 껐다 하는 게 전부다.
행사가 끝나면 다 같이 달려들어 일사천리도 청소와 정리를 하고 가니 언제 무슨 행사가 있었냐 싶게 뒷마무리도 완벽하다. 도대체 이 시골 마을에서 이런 일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의아하지만 매년 행사는 더욱 풍성해져 간다. 게다가 이 행사는 요즘 그 흔한 무슨 사업의 일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예산이 지원되는 것도 아니어서 주민들의 십시일반 찬조금과 협찬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인상 깊다.
그래도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된 데는 마을 입구에 있는 노산교회라는 작은 교회 덕분이다. 교인이래야 30명 남짓한 작은 농촌교회이지만 목사님 내외와 교인들의 각별한 문화사랑 때문에 교회는 일 년 내내 음악과 미술 활동이 끊이지 않는다. 교회가 마을의 문화센터이자 교육센터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십 여년 전 감자꽃스튜디오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회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한 게 그 단초는 되었지만, 이제는 전적으로 교회 자체의 역량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수행하고 있으며 연말이면 이 성탄극장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이 교회도 크리스마스면 다른 교회들처럼 교회 안에서 성극도 하고 캐럴도 연주하는 행사를 해 왔으며 사실 이것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젊은 목사 내외는 몇 년 전부터 과감하게 마을로 나와, 보다 많은 사람이 같이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보니 교인이 아니어도 누구나 대환영이고, 유아, 청소년, 중장년, 노인까지 세대와 남녀 구분도 없다. 원주민과 귀촌 자, 방문객, 공무원, 심지어 올해에는 인근에서 국도 공사를 하는 현장 소장님까지 참석했다.
최근에는 도시나 시골이나 지역의 공동체가 문화를 중심으로 활성화하려는 긍정적인 시도가 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문화기관이나 사회단체들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돕는 사업이나 지원도 많아졌다. 그러나 역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전제로 이루어진 생활 속의 문화 공동체이다. '성탄극장'은 이미 끝났지만, 그 여운이 아직 남아 벌써 내년도에는 무슨 프로그램으로 즐거움과 감동을 줄지 지금부터 기대된다.
이선철 용인대 교수 ㆍ감자꽃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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