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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 점철된 세상, 인간의 악은 어떻게 태어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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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로 점철된 세상, 인간의 악은 어떻게 태어났나

입력
2013.12.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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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의 엘파소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의 후아레스는 여성 연쇄 살인사건으로 악명 높은 도시다. 밀레니엄 전후로 10여 년 동안 발견된 유해만 400구 가까이 되는 천인공노할 사건들이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아 오늘의 야만을 증거한다. 칠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멕시코로 이주해 청년기를 보낸 로베르토 볼라뇨(1953~~2003)가 악의 기원과 본질을 탐색하기 위한 서사적 모험을 감행키로 했을 때, 그 충동이 후아레스로 향한 것은 그러므로 응당하다.

1,752쪽에 달하는 대작 소설 은 '제2의 가브리엘 마르케스'로 불리며 오늘날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대표하는 대형 작가로 자리잡은 볼라뇨의 유작이자 미완의 역작이다. 5년 동안 간 이식 수술도 미뤄가며 집필에 혼을 쏟은 볼라뇨는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직후 50세를 일기로 타계했고, 소설은 출간 즉시 '금세기 최고의 작품'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스페인과 칠레의 문학상을 휩쓸었다.

다섯 권의 소설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지류처럼 펼쳐지다가 하나의 거대한 바다로 합류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유령작가 아르킴볼디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모인 문학비평가들의 탁상공론으로부터 시작한 소설은, 아르킴볼디의 책을 번역한 아말피타노 교수가 후아레스를 모델로 한 멕시코 북부의 도시 산타테레사에 정착하는 과정을 거쳐 2차대전에 참전한 금발 소년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르킴볼디라는 필명을 쓰게 되는 이야기에까지 마침내 휘몰아치듯 도달한다. 연쇄살인마와 유령작가라는 두 개의 흥미로운 서사 장치를 통해 전쟁과 독재, 대학살로 점철된 거대한 악의 역사를 파헤쳐간 거침없고 대담한 소설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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