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6일 아베 신조 일본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개탄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시대착오적 행위" 등의 격한 용어를 동원해 강하게 대응했다. 2006년 8ㆍ15 광복절에 전격 단행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보다 항의 수위와 표현은 더 단호해졌고, 정부 성명의 격도 한 단계 높였다. 우리 정부가 이번 사안을 매우 심각하고도 엄중히 보고 있다는 뜻이다.
2006년에는 추규호 당시 외교통상부 대변인이 성명을 발표하며 "깊은 분노와 실망을 표명한다"는 선에 그쳤지만, 이날 성명의 첫 일성은 "개탄과 분노"로 바뀌었다. 도조 히데키, 고이소 구니아키 등 전범들의 이름도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성명 명의도 외교당국 차원을 넘어 정부 대변인인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했다. 정부 대변인이 야스쿠니 참배와 관련해 입장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참배 직전에 관련 사실을 알렸지만 이미 정해놓은 일을 통보한 것에 불과해 성명에 영향을 미칠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강경한 기조는 청와대 기류에서도 읽혀진다. 청와대는 공식 언급은 자제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격앙된 분위기가 역력하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취임 이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줄곧 일본 지도부의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한 박 대통령의 대일관계 원칙을 깡그리 무시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올해 3ㆍ1절 기념사를 통해 "일본은 올바르게 역사를 직시하고 책임 있는 자세와 행동이 필요하다"고 했고, 지난 6일 방한했던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일본 측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대응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 때와 달리 강도 높게 진행될 전망이다. 2006년 정부는 한일 정상간 셔틀외교 중단 등 기존 조치 이상의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다. 당시는 고이즈미 체제가 한 달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 일본 새 지도부와 관계 정상화 해법을 논의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정권을 잡은 아베 총리는 예정대로라면 2015년 9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어 당분간 한일관계의 새판을 짜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는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유관부처 장ㆍ차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어 정부 규탄 성명 이후 추가 조치 및 한일 외교 정책 방향 등에 대해 중점 논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일단 일본이 총리 참배를 강행한 배경을 면밀히 분석한 뒤 이병기 주일대사의 소환을 포함한 추가적 대응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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