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회계사도 기업 자산에 대한 감정평가를 적법하게 할 수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감정평가는 감정평가사의 고유 업무"라고 판단했던 1심 판결이 뒤집힌 것이어서 관련 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2011년 국제회계기준(IFRS) 국내 도입에 따라 상장 기업 및 금융회사는 정확한 기업가치 산정을 위해 부동산 등 보유자산을 장부상 가치가 아닌 현재 시장가치로 다시 평가해야 한다. 공인회계사와 감정평가사 업계는 수천억원대 시장인 재평가 업무를 둘러싸고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벌여왔다.
업계간 갈등은 형사소송으로 비화됐다. 회계법인 삼정KPMG어드바이저리가 2009년 삼성전자의 의뢰를 받아 서울 서초동 사옥 부지 등 부동산에 대한 자산 재평가를 실시, 장부상 가액 3조4,000억여원을 7조2,000억여원으로 재평가하고 용역 비용 1억5,400만원을 받은 것에 대해 한국감정평가협회가 부동산가격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부감법) 위반 혐의로 형사 고발한 것이다. 부감법은 감정평가사가 아닌 사람이 토지 등의 경제적 가치를 판정해 돈을 받으면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삼정 소속 공인회계사 정모(49)씨 등 3명에게 올 8월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감정평가업자 제도가 특별히 마련된 국내 법률상으로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 규정된 '전문적 자격 있는 평가인'을 감정평가사로 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1부(부장 정호건)는 원심을 깨고 정씨 등 2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공인회계사의 감정평가는 부감법상 처벌 대상으로 인정하면서도 K-IFRS도입에 따른 회계목적으로 감정평가를 하는 경우 공인회계법상 허용된 '회계에 관한 감정'으로 볼 수 있어 형법20조 '정당행위'에 해당, 위법성이 없어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정의 검토보고서는 K-IFRS도입에 따른 토지의 공정가치 평가를 위한 것으로 공인회계사법 2조 1호가 규정한 회계에 관한 감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공인회계사 자격증 없이 감정에 참여한 대표이사 이모(58)씨에게는 1심과 같이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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