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스라엘의 스파이가 된 미국인이 있다. 1985년 미국 기밀문서를 이스라엘에 넘긴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광적인 시온주의자 조너선 폴라드다. 미국 해군정보국(ONI)에서 일했던 그는 중동지역의 군사위성 사진 등 1,000여 건의 기밀을 주미 이스라엘 무관에게 전달했다. 이스라엘 정부의 끈질긴 석방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복역 중인 그의 간첩행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정보협력을 수십년 퇴보시킨 비열한 행위로 기록되고 있다. 우방 중의 우방으로 불리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폴라드 사건은 정보전쟁에는 적도 아군도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정보기관이 무한증식을 시작한 역사적 계기는 1983년 241명의 미군병사가 희생된 베이루트 주둔 미군 해병부대 막사 폭탄테러와 88년 스코틀랜드 록커비 마을 상공에서 공중폭발로 270명이 숨진 팬암여객기 사건이다. 베이루트 사건은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의 소행으로 알려졌지만, 팬암기 테러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이 배후라는 정황에도 불구하고 끝내 테러리스트를 단죄하지 못했다. '외교 아니면 전쟁'이라는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회색지대'가 엄존한다는 것을 깨닫게 한 사건들이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희미한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이 정보기관을 앞세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은밀하고 치명적인 대테러전을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9ㆍ11 이후에는 아예 애국법을 제정, 견제 없는 정보기관의 독주를 보장했다.
그러나 비대해진 정보기관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94년 중앙정보국(CIA)을 휘청거리게 했던 올드리치 에임스 사건은 CIA에서 러시아 정보담당 책임자로 일하던 그가 미국에 포섭된 소련 정보요원과 군 간부들의 신원을 소련에 팔아 넘긴 이중간첩 사건이었지만 통제 받지 않는 정보기관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치명적인 해악을 미치는가를 경고한 경우였다. 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91년 소련의 해체를 감지하지 못한 CIA의 역사상 최대의 치욕이 불거져 나온 것도 이 즈음이다. CIA가 있는 지명을 따 회자된 '랭리의 암흑기'였다.
우리의 국가정보원은 세계 어떤 정보기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권한이 막강하다. 해외ㆍ대북 정보활동은 물론, 국내에서의 정보수집 및 대공수사권까지 무소불위의 위치다. 해외와 국내로 방첩활동의 영역이 엄격히 분리돼 있는 미국의 CIA와 연방수사국(FBI)을 합친 것보다 더 강력하다는 말은 흔한 얘기다. 논란이 되는 국정원의 개혁은 이런 비대해진 조직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가 핵심이다.
전세계 국가는 예외 없이 해외와 국내로 정보기관을 분리해 운영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정보권력의 집중이 가져오는 폐해가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국내 정보활동의 명분을 내세울 때 전가의 보도처럼 써먹는 북한 리스크도 다른 나라의 안보환경과 비교할 때 설득력이 없다. 온통 적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이나 테러 위협을 짊어지고 사는 미국의 국내 안보위협은 결코 우리보다 덜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에서 모사드나 CIA의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암살, 납치, 심지어 보복테러까지 자행하는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그럼에도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것은 국내정보기관인 샤바크와 분리해 순전히 해외공작에 전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CIA가 끊임없이 의회의 불신을 받고, 심지어 해체 논란까지 나오는 수모를 겪는 것은 냉전 이래 잔존해 있는 정치성, 관료주의에 원인이 있다.
국정원의 조직을 그냥 두는 한 댓글 사건과 같은 정치개입, 여론조작은 언제든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전세계를 경악시킨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도ㆍ감청 파문도 무한팽창 한 정보기관이 낳은 필연적인 결과다. 국정원이 시대착오적인 관행에서 벗어나려면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안이 아닌 밖을 지향하는 강하고 효율적인 국정원을 만드는 길이다.
황유석 논설위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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