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이 따로 없다. 올해만 900만명 넘게 본 영화가 두 편('설국열차'와 '관상)이다. 배우로서 최고의 해를 보냈다 할 수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그는 여전히 클라이맥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모티브 삼은 '변호인'으로 연말 극장가를 다시 매혹시키고 있다. 이 영화는 개봉 8일째인 25일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로써 올해 2,000만이 넘는 관객이 송강호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셈이다.
'변호인'의 흥행 속도는 극장가 상식을 뛰어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관객들이 '변호인'을 만나려 하고 있다. 여느 영화와 달리 개봉 첫 주 일요일(22일) 관객 수(54만3,788명)가 토요일(21일) 관객 수(54만1,422명)를 앞질렀다. '변호인'의 1,000만 관객 클럽 가입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충무로도 의구심을 재빨리 거두는 모양새다.
극장 밖 상황이 '변호인'의 흥행을 밀어준다는 분석이 있다. 철도노조 파업 등 사회 현안에 대한 정부의 강경 대처가 잠재적인 관객층을 자극했다는 평가다. 돈만 좇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인권 변호사로 변신하는 '변호인'의 주인공 송우석(송강호)의 사연이 정부에 반감을 지닌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사회 상황이라는 것이다. 영화 외적인 흥행 요인이 그렇다 해도 송강호의 공을 뺄 수 없다. 영화인들은 또 한번 '송강호 공식'이 통했다고 말한다.
1997년 '넘버 3'로 얼굴과 이름을 알린 송강호는 여러 영화에 두루 출연했다. '쉬리'와 '괴물' 등 상업영화의 주요 배역을 맡았고, '밀양'과 '박쥐' 등 예술성 짙은 영화에도 부지런히 등장했다. 그의 흥행작에는 공통적인 법칙이 있다. 이른바 '서민+곤경+유머=대박' 공식이다.
송강호는 주로 서민적인 배역을 맡아 뜻하지 않게 역사적 사건이나 큰 재난에 휘말리는 모습을 웃음기 어린 연기로 보여줬다. 역대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인 '괴물'의 강두와 '효자동 이발사'의 한모가 그랬고, '관상'의 내경도 마찬가지였다. 고졸 출신 속물 변호사 우석도 다르지 않다. 적자생존의 세상 속에서 자신(가족이나 소신)을 지키면서 무지렁이 같은 삶을 지탱해 가야 하는 그의 영화 속 모습은 인생의 페이소스를 담기 마련이었다. 대중이 그에게 열광하는 주요 이유다.
반면 송강호가 사회 상류층이나 엘리트를 연기한 영화들은 번번이 흥행에서 쓴맛을 봤다. '복수는 나의 것'(중소기업 사장 역)과 '남극일기'(남극 원정대 대장 역)가 대표적이다. 심지어 깡패임에도 중년의 멋을 물씬 풍기는 모습을 비춘 '푸른 소금'도 흥행에 참패했다. 조금이라도 말끔하거나 공부를 많이 한 듯한 외모를 보이면 관객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그가 '이상한 놈' 태구를 연기했을 때 제격이라는 세평이 따른 이유다. 김영진 명지대 영화뮤지컬학부 교수는 "송강호는 장삼이사의 평범한 외모를 지닌 안티 히어로다. 그의 진지하면서도 웃음 섞인 연기는 매우 위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송강호 공식'만으로 송강호의 파괴력을 설명할 순 없다. 전찬일 아시안필름마켓 부위원장은 "그의 진화의 끝이 어디일지 예측이 안 간다. 스스로가 최대의 라이벌인 배우"라고 평가했다. 전 부위원장은 "한때 라이벌로 꼽혔던 많은 배우들과 달리 송강호는 자기를 넘어섰다. 연기를 잘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배우가 됐다"고도 설명했다. 김영진 교수는 "시나리오를 보는 관점이 뚜렷하고 좋은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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