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눈이 내린 모양이다. 출근길 지하철은 초만원이었다. 자가용 출근을 포기한 사람들이 지하철로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어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감고 지하철에서의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다린다.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를 빠져나올 때 그러니까 지상으로 몸을 이끌 때 비로소 인간다움의 품위를 느낀다. 그럴 때 내 눈앞에 떠오르는 건 흰 눈처럼 분재되어 흩날리는 언어들이다. 그것은 어떤 때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몇 줄의 산문이 되기도 하고, 두세 음절의 아주 짧은 단어가 되기도 하고, 더 이상 손 댈 필요 없는 시가 되기도 한다. 공중에 흩날리는 말의 미세한 결들, 심연에 툭툭 떨어지는 말의 육감들, 고단하고 긴장감 넘치는 삶의 주인은 그것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거의 반사적이다. 나는 그럴 때 내가 문학적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걸 실감한다. 나는 물리적 생존으로서의 삶의 구체적인 행위의 막간에 들어 있는 반성적 사유들이 곧 글쓰기의 '줄기세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어 성격의 여행을 다니고, 전화로 수다를 떨고, 개봉영화나 드라마를 꼬박꼬박 찾아보면서 문학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긍정하지 않는 편이다. 그들의 문학을 신뢰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내게는 여전히 어떤 포즈가 남아 있다. 타인의 눈에 보여지길 바라는 어떤 이미지 같은 것. 이를 지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포즈로부터 자유로워진 나이란 얼마나 아름다운가.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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