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勞)-정(政)관계가 되돌리기 힘들 정도의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노동문제의 큰 그림을 그리고 진두지휘할 정부 노동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동 전문가들은 25일 "정부가 철도파업에 대해 민주노총 강제 진입이라는 매우 초보적이고 아마추어 같은 대응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태를 키웠다"며 "이는 노사관계의 민감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컨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청와대에는 노동과 복지를 함께 담당하는 고용복지수석이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첫 수석인 최성재 전 수석과 지난 8월 임명된 최원영 수석 모두 보건복지 분야 전문가다. 고용노동부에서 파견된 한창훈 고용노동비서관이 있지만 발언권이 약해 실제로는 노동 사령탑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공공기관에 몸 담고 있는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철도파업 같은 큰 사안을 치를 때는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함에도 정부가 파장을 과소평가해 처음부터 대량 징계 등으로 단순하게 대응해왔다"며 "뜻대로 되지 않으니 강경책만 되풀이하고, 결국 한국노총까지 등을 돌리는 정책실패로 귀결됐다"고 비판했다. 한 보수 성향의 사립대 교수는 "정교하고 치밀하게 노사관계의 속성을 파악하는 컨트롤타워가 대통령에게 문제의 핵심을 전달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우려는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 인선 때부터 나왔고,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중 통상임금 발언으로 '경고'사인이 켜졌다. 박 대통령이 댄 애커슨 GM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듯이 답변하면서 노동계의 반발을 불러 오히려 노사정 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가로막았다. 당시에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동 문제를 제대로 아는 참모가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답변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주무부처인 고용부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방하남 고용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경찰의 민주노총 강제 진입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답변해 현안에 손을 놓고 있음을 자인했다. 방 장관 역시 고용복지와 연금 분야 전문가라 취임 초부터 노사관계를 제대로 풀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았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정현안에 대해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할 고용부 장관이 강제 진입을 몰랐다는 것은 장관이 너무 무책임하거나 정부 내에서 소외되고 있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라며 "또 노동 전문가 없이 검찰 출신 등 법 전문가들이 법치주의만 내세우며 강경하게 몰고가 사태를 더 꼬이게 만드는 만큼 청와대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남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노동 컨트롤타워가 절실하다. 장시간 노동, 기형적인 임금체계, 남성 중심 전일제 일자리 등 산업화시대 노동시장 모델이 내년이면 임금체계 개편, 장시간 근로 단축, 정년연장 관련 법 및 제도 개선을 통해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는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 목표와도 긴밀히 연결된다. 하지만 비전을 제시하고 대화를 주도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전망은 밝지 않다. 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노동 전문가는 "노사정 대화로 노동시장의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할 중요한 시점에 정부가 철도노조에 밀리지 않겠다며 엉뚱한 싸움만 하고 있다"며 "새 시스템을 제대로 설계할 사람을 두고 충실히 준비하지 않으면 현 정부만의 실패를 떠나 국가 전체가 실기(失期)를 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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