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중 25년 일선에서 뛰어 수준급 골프, 소주 2병도 거뜬"금융업계 사건·사고 잇달아 현장 경험과 감각 중요해져경영 환경 불투명한 상황… 양적 성장보다 내실 다질 것"후배들에게도 존댓말… 업무에선 사안마다 질문 공세
"온화함으로 주변을 무장해제 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에 대한 욕심이 그 누구보다 많아 주변을 긴장시킵니다. 후배들은 그런 리더십을 마더십(어머니의 리더십)이라고 부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은행장 권선주(사진ㆍ57) IBK기업은행 내정자에 대한 직원들의 평가다.
권 내정자는 24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여성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 시대 흐름 덕분에 은행장이 된 것 같다"며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은행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첫 여성 은행장이라는 점에 어깨가 무겁다"고 겸손해했지만,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에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권 내정자는 "제가 잘해야 여성 후배들도 꿈을 키울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 책임감으로 열심히 해서 나중에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권 내정자는 1978년 중소기업은행(기업은행 전신)에 입사한 이후 35년 중 25년을 영업 현장에서 일해왔다. 수준급의 골프실력과 소주 2병은 거뜬한 주량은 영업 현장에서 '산전수전' 겪으며 쌓은 전리품이다. 그는 "최근 은행 영업 일선에서 여러가지 사건ㆍ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현장경험과 감각이 은행장이 갖춰야 할 리더십 덕목으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며 "이런 점에서 내가 쌓은 현장경험이 높이 평가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첫 여성 1급 승진'에서 '첫 여성 지역본부장'을 거쳐 '첫 은행장'까지, 권 내정자는 무수한 '최초'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 그 공을 여성도 업무영역에 제한 없이 활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준 기업은행의 개방적 풍토에 돌렸다. 그는 "다른 은행에서는 검사부나 여신관리부는 남성만 근무하는 곳으로 통하지만, 기업은행에서는 여성들이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며 "남녀 차별이 적은 기업은행의 문화를 만들어 준 선배들이 있기에 내가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내비쳤다.
행장 취임 후 주력할 점에 대해 권 내정자는 내실경영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양적 성장에 치중해 왔는데, 금융환경이 당분간은 안정성을 추구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그는 "은행은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 사회적 책임 등을 모두 추구해야 하지만,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이라 양적 성장보다 내실 경영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전날 기업은행이 경남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것에 대해서도 "결과를 두고 봐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권 내정자는 좀처럼 큰소리를 낸 적이 없고, 후배들에게도 존댓말을 쓴다. 대신 업무에 있어서만은 꼼꼼하고 세심하다. 한 직원은 "어머니처럼 친숙하고 여성스러운 면이 많지만 업무 면에서는 사안마다 많은 질문을 던져 준비를 철저히 하게 만드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권 내정자는 "직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은행장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기업 출신으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남편의 아내로서, 두 자녀의 어머니로서 가정과 일을 양립해야 했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직원들이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는 끝으로 "기업은행 직원들이 일터에 나오면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생활할 수 있도록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말하는 그의 마더십이 무엇인지가 전해지는 대목이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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