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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2월 25일] 착한 고객도 좀 케어해 주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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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2월 25일] 착한 고객도 좀 케어해 주자나!

입력
2013.12.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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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구독해오던 A신문을 얼마 전 끊었다. 신문기자가 신문 구독을 중단하는 게 모순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매일 아침 스마트폰과 태블릿PC로 거의 모든 조간신문의 PDF판을 읽고 있는 터라 굳이 종이신문을 따로 볼 필요가 없었다. 1만5,000원의 월 구독료가 아까워서는 절대 아니었다.

A신문사 독자서비스센터에 전화를 걸어 더 이상 신문을 넣지 말라고 했더니, 몇 시간 후 우리 동네 지국에서 연락이 왔다. 자세한 이유를 묻길래, 길게 설명하기가 귀찮아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구독하겠다고 한 뒤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그 때 지국 직원은 뜻밖의 제의를 했다. 만약 계속 신문을 봐주면, 6개월 무료구독에 꽤 고가의 사은품까지 주겠다는 것이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1년치 구독료 이상의 금전적 이득이었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 잠깐의 고민. 하지만 어차피 6개월 뒤면 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어 난 원래대로 구독 중단을 통보한 채 전화를 끊었다.

솔직히 난 충성도 높은 장기 고객이었다. 이사를 하면 자발적으로 바뀐 주소를 알려줬다. 대금을 자동이체 했기 때문에 요금 한번 밀린 적도 없다. 어쩌다 신문이 배달되지 않거나, 늦게 배달되어도 항의조차 않았다.

하지만 이런 '착한 고객'임에도, 십 수년 구독기간 동안 단 한번도 무료구독 기회나 하다못해 허접한 사은품조차 받은 적이 없다. 그러다가 신문을 끊겠다는 '나쁜 고객'이 되니까, 비로소 큰 혜택을 제의 받게 된 것이다. 아이러니를 넘어,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보험을 갱신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우리 가족은 B자동차보험에 오랫동안 가입해왔다. 1년에 한번 갱신 시점이 오면 으레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고, 그냥 습관적으로 연장을 해왔다.

그러다 저렴한 다이렉트보험이 대세가 되면서, 갈아타기로 마음을 먹게 됐다. B보험사 측은 장기 고객인 우리가 다른 보험사로 간다는 말에, 보험료며 부대 혜택이며 이런저런 미끼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착한 고객'일 때는 아무런 혜택도 없다가, '나쁜 고객'의 길을 선택한다고 하자 그제서야 제대로 된 호의를 베푸는 것이었다.

오랜 고객이 홀대 받기는 이동통신만 한 것도 없다. 휴대폰을 처음 가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15년 넘게 나는 C이동통신사 가입자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가족 전부가 다 그렇다. 다른 이동통신사로부터 최신 기기로 바꿔준다는 숱한 유혹의 전화를 받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연체 한번 없는 장기우량고객으로서 지금까지 이동통신사로부터 무슨 대접을 받았는지 도무지 기억이 없다. 굳이 꼽자면 작년부터 가끔씩 주기 시작한 음성ㆍ데이터통화 무료 리필 쿠폰 정도?

물론 이것도 요긴하게 쓸 때가 있지만, 정작 '초짜'가입자들이 누리는 호사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된다. 이동통신사 수익에는 단 한 푼도 기여한 적이 없음에도, 통신사를 갈아탄(번호이동) 신규 가입자들은 수십 만원 많게는 100만원까지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LTE면 뭐하고 광대역이면 또 뭐하나. 말 없이 묵묵히 남아온 장기우량고객이 홀대 당하고, 대신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철새고객이 우대받는 게 지금 이동통신시장의 일그러진 현실이다.

기여와 보상이 일치하는 게 공정한 시장경제다. 화이트 컨슈머와 블랙 컨슈머를 제대로 차별화할 줄 알아야 신뢰받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아무리 울지 않는 아이 젖 주지 않는 게 세상사이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게 인간속성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된 시장은, 제대로 된 기업은 그래선 안 된다.

말없이 꾹 참고 있는 수많은 착한 장기고객들을 대신해 한마디 하고 싶다. 기업들이여, 나도 좀 케어해 주자나!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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