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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 노·정 충돌] 박근혜 대통령, 공기업 개혁에만 몰두하다 노·정 갈등 뇌관 건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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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파업 노·정 충돌] 박근혜 대통령, 공기업 개혁에만 몰두하다 노·정 갈등 뇌관 건드려

입력
2013.12.2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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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철도노조 파업 등과 관련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며 거듭 비타협적 대응을 천명한 것은 이번 파업 대처에 따라 향후 노사관계는 물론이고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대대적인 공공 부문 개혁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핵심 국정과제인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그간 고강도의 공기업 개혁 드라이브를 주문해왔고 정부도 지난 11일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메스를 들었다. '철밥통' 구조와 방만 경영으로 부채가 눈덩이처럼 급증한 공기업의 비효율과 잘못된 관행을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지방 공공기관 부채까지 합치면 686개 기관의 총 부채는 565조 8,000억원으로 국가부채(443조원)를 뛰어넘어 위험수위에 있다. 일부 기관의 경우 누적된 부채로 이자도 갚지 못해 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을 방치할 경우 재정 부담에다 민간 부문의 성장 잠재력까지 해칠 수 있다는 게 청와대 판단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기업 개혁은 역대 정부가 모두 추진해왔지만, 쉽지 않은 과제로 당장 저항을 받더라도 국민 부담을 덜고 공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정부가 첫 번째 개혁의 날을 댄 곳이 직원 3만여명으로 인원수가 가장 많은 공기업인 코레일이다. 고질적인 영업적자 등으로 부채가 지속적으로 누적돼온 곳이지만, 철도노조가 노동계의 대표적인 강성으로 꼽혀 역대 정부의 개혁 작업이 모두 난관에 부딪혔다. 철도노조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공은 이번에 밀릴 경우 향후 다른 공기업 개혁에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고 보고 '타협 없는 원칙주의'로 기선을 잡겠다고 의도가 짙다. 여기에 고임금 등의 혜택을 뿌리 뽑는다는 명분으로 국민적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부의 대응 과정이 너무 거칠고 서툴다는 지적이 당장 제기되고 있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공공기관 개혁을 앞두고 기득권 세력을 용납하면 아무런 개혁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국민을 상대로 공기업 개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설득에 소홀했던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철도노조 파업 배경이 된 수서발 KTX 법인 신설이 민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는 데만 급급할 뿐, 왜 철도공사를 개혁해야 하는 지에 대한 대국민 설득과정은 미흡했다는 얘기다. 파업 초반부터 파업참여자 직위해제란 충격 요법을 사용해 여론의 반발심부터 부른 상황에서 22일 경찰이 노정 갈등을 불사한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강제진입에도 불구하고 지도부 검거에 실패, 여론 악화에 불을 지른 격이 됐다.

더군다나 정부가 낙하산 인사 등에 따른 정부 책임, 인적 구조조정 등 핵심 문제를 외면한 것도 잘못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코레일의 경우 고속철도 수요예측 실패, 낙하산 경영진의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부채(17조원)가 급증했는데도 노조 탓만 하다 보니 일방적 책임전가라는 역풍이 거세게 나오는 것이다. 또 경쟁체제란 명목으로 도입된 수서발 KTX 법인이 코레일의 경영 악화를 부를 가능성이 커 결국은 코레일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데도 이런 문제를 회피해 노조원들의 불안감을 키운 측면도 있다.

정부는 '공기업 개혁'명분으로 '비타협 원칙'을 내세우고 있지만, 당사자들에겐 일자리와 연동된 노사 문제 성격인 만큼 정부가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선진국에서도 노사문제는 법과 원칙에 따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유연하게 대응한다"며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되, 노사 문제와 관련된 세부적인 내용은 상황에 맞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임금체계 개편 등 노사 이슈에 대해서 '노사정 대타협'을 강조한 걸 보면 노사문제의 민감성과 폭발성을 모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노사 문제를 일방적으로 밀어 부칠 경우 노사, 노정간 격렬한 대립에다 국론 분열을 가중시킬 수 있어 사회적으로 치러야 할 대가가 만만찮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공기업 개혁이란 명분에 매몰돼 상황 고려 없이 돌진하다 보니, 노사, 노정 갈등의 뇌관을 건드린 꼴이 됐다. 정부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처리해야 할 노동이슈가 산적해 노동계와 관계증진을 도모해야 할 시점에서 경찰이 성급하게 민주노총 사무실을 진입한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다. '공기업 개혁'이란 명분보다 '노동 탄압'이 부각되는 일을 자초한 격이다. 이로 인해 박 대통령이 이날 철도노조에는 '비타협'을, 노사 이슈에 대해서는 '대타협'을 주문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율 배반적인 메시지로 비칠 게 뻔하다. 청와대가 치밀한 준비도 없이 공기업 개혁에 착수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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