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 41개 가운데 산업부 관료출신이 기관장으로 포진한 곳은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그 세는 금융관련 공공기관을 점령하고 있는 모피아(기획재정부ㆍ금융위원회 관료 출신들)에 뒤지지 않는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이 23일 산하 공공기관장들을 모두 소집했다. 박근혜정부의 주요 국정과제가 된 공기업 개혁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산업부 출신 공공기관장들은 대부분 윤 장관(행정고시 25회)의 선배 혹은 동료들이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과 김동원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은 행시 14회로 윤 장관보다 무려 10년 이상 대선배다.
윤 장관은 이날 작심한 듯 호통과 질타를 쏟아냈다. "경영개선계획을 직접 보니 기관장들의 위기의식을 느낄 수 없다. 실천의지도 없어 보인다" "기관장들이 집단 반기를 든다는 느낌마저 든다"….
특히 부채과다와 방만경영으로 도마에 오른 에너지공기업이 주된 타깃이 됐다. 에너지공기업엔 조환익 한전사장 외에, 행시 동기이자 함께 차관을 지냈던 조석 한수원사장, 역시 산업부 선배인 고정식 광물자원공사 등 '산업부OB'들이 유독 많다.
윤 장관은 "제출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꼼꼼히 봤는데 사실상 '내 임기 동안 그냥 버티겠다'는 게 눈에 보인다"며 "차라리 안 하겠다고 얘기하는 게 낫지 않나"고 쏘아붙였다. 이어 "부채를 줄이기 위해 투자를 자제한다는 건 누구나 내놓을 수 있는 답"이라며 "재무구조 개선대책으로 일제히 임직원 급여 반납을 제시했던데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 거냐, 아니면 표절한 것이냐" 는 노골적 비난도 이어졌다.
윤 장관은 결국 "창의적인 안을 1월 중에 다시 갖고 오라. 그게 안 되면 일찌감치 사표를 내라"는 최후통첩으로 회의를 끝냈다. 옛 후배와 동료로부터 야단을 맞은 기관장들의 얼굴은 회의 내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는 후문이다.
윤 장관이 이렇게 화를 낸 건 정부가 빚 많은 공기업으로 꼽은 12개 중점관리대상 가운데 산업부 산하기관이 무려 5개(한전 가스공사 석유공사 광물자원공사 석탄공사)나 됐기 때문. 산업부 관계자는 "에너지관련 공기업들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만큼 선후배 동료를 떠나 장관이 직접 나서 악역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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