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시대 삶의 방식이 '더하기'였다면, 산업시대의 삶은 '곱하기'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지는 주식가격과 아파트값을 지켜봐야 하는 지금, 기하급수의 반대쪽으로 졸아드는 우리 삶은 '나누기'다. '나누기의 시대'는 위기와 불안을 증폭한다. 그것은 '나눔'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 끝없는 '빼기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평균 가격 2,000원. 이런 물건들을 하나 둘 팔아 지난해 30억9,900만 원의 '나눔'을 실천한 '대단한' 가게가 있다. 2,835명의 개인과 95개 기업으로부터 1,028만8,698점의 물품을 기증받아 200만9,292명으로부터 거둔 정성이다. 지난 10년간 나눔 총액은 229억4,000만 원이다. 비용을 뺀 모든 수익을 그대로 사회에 되돌려 '더 대단한' 이 가게는 수식어가 그대로 마땅한 이름인 '아름다운가게'다.
아름다운가게에서 나눔의 가치는 행복하게 순환한다. 내게 더 이상 필요나 쓸모 없어 버리면 쓰레기이지만, 이를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하면 나눔의 소중한 씨앗이다. 아름다운가게 1만386명 자원봉사자들이 이를 깨끗이 손질하고 다듬어서 알뜰히 판매한다. 이렇게 거둔 수익금을 모아 복지 사각지대의 가정이나 긴급한 생활자금이 필요한 가정을 지원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돕는다.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요긴하게 쓰일 뿐 아니라, 형편이 어려운 이웃을 돕는 자선이 된다는 점에서 사회적 살림이며 환경ㆍ생태적 살림이기도 하다. 나눔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도 육성한다. 나눔과 살림의 선순환 프로그램이다.
김정은(45) 아름다운가게 대구·경북본부장은 5년 전인 2008년, 8년 동안이나 맡아온 대구여성단체협의회 사무국장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다. 그러나 공익적인 삶을 살며 키워진 그의 능력을 아까워하던 사람들은 그를 오래 내버려두지 않았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바람을 넣었다. 설립 취지와 활동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한 그는 아름다운가게의 일원이 됐다. 일을 시작하면서 도리어 건강을 회복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했을 무렵, 아가씨 한 분이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예쁜 소품들을 사가던 그는 얼마 후 청첩장을 들고와 혼수 용품을 살펴보았고 몇 달 후 배가 불러 육아용품이나 장난감, 그림책들을 골라갔습니다. 올해 그는 세 살 넘은 아이를 데리고 저희 가게에 놀러 왔습니다. 이전에 사갔던 아기 옷과 이불, 용품들을 다시 기증하러요. 사회적으로, 생태적으로 순환의 삶이 완성되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사회적·생태적 나눔을 실천하는 그 분의 삶이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랍니다."
올해의 보람 또 한 가지. "하루는 중년의 전업주부가 저희 가게를 찾아왔습니다.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분위기가 강한 가정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을 돌보던 그는 어느 날부터 심각한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까지 생각한 분이었습니다. 아름다운가게의 자원봉사 일을 시작한 그분은 요즘 우울증을 말끔히 씻었습니다. 아름다운가게는 이윤이 아니라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를 중시합니다. 열린 사랑방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일하는 분들도 이웃과의 살가운 관계를 맺으면서 자기 존중감과 삶의 의미를 찾게 된 거지요. 가부장적인 문화가 강한 대구·경북에서 더욱 보람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기부·기증의 규모에 비례해서 개설되는 아름다운가게의 점포 숫자가 경북에는 단 1개, 대구에는 4개뿐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민망하다. 최근까지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숨은 부자들이 많다고 소문났지만, 기부와 나눔에는 인색한 대구·경북의 자화상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쓰레기통 직전에 나눔과 살림의 장미꽃을 피우는 마술입니다. 재료는 옷, 모자, 신발, 가방, 액세서리, 장난감, 문구, 책, 그림, DVD, 소형 가전 등 버려지는 모든 것입니다."
취업난 속에서도 스펙 쌓기 대신 용감하게 봉사활동을 택한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봉사활동이 공부보다 더 큰 도움이 돼서 취업에 성공했다"며 선물을 들고 찾아 왔을 때의 감격. 맨바닥 한가운데 작은 난로 하나 놓인 썰렁한 아동시설에 온풍기를 설치하고서 아이들과 함께 뜨뜻한 바람을 쐬며 울컥하던 기쁨. 이 두 가지만으로도 행복했다는 그에게 올해는 아름답기만 하다.
김윤곤 엠플러스한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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