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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2월 24일] 몰상식의 화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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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12월 24일] 몰상식의 화근

입력
2013.12.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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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이른 바 일류대의 한 유명 철학교수가 프롬의 저서 를 번역하면서 그 책의 핵심 내용인 노동조합을 무역협회로 오역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책의 주제인 노동조합 중심의 건전한 사회는 무역협회 주도의 사회로 바뀌어 버렸다. 그 책이 포함된 우리나라 유일의 사상전집은 오랫동안 우리의 사상계를 지배했는데 꼭 그 책 탓만은 아니겠지만, 그 교수는 최규하 대통령 당시 초대 교육부장관 등 여러 벼슬을 거쳤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당시 서양에서 유행한 진보적인 사상을 소개했고, 프롬의 책도 그 하나로 번역했을 것이니'trade union'이 노동조합임을 몰랐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서 70년대 당시 그 책을 읽었을 때는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80년대 이후 그 사람의 행적을 보면서 실수가 아니라 소신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노동조합 없이 무역협회만 있어야 건전하다고 믿는 그런 소신 말이다. 아니 노동조합은 없애고 무역협회만 두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자들은 70~80년대만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독일이 아니라 달나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도 마찬가지다. 한 때는 진보니 양심이니 학문이니 하고 떠들어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권좌에 취하면 변해버린다. 상식마저 무시하고 미쳐버린다. 아니 처음부터 상식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몰상식이니 비상식이 아니라 무상식이다.

철도노조 파업은 으레 그렇듯이 정부의 강경 대응에 의해 파면, 구속, 배상이라는 악순환으로 끝날 듯하다.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악순환의 연속이 이어질 것 같아 우려된다. 최근 법원이 통상임금에 관해 노동계측에게 유리한 판결을 했지만(반드시 유리하거나 옳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그 며칠 뒤 90억 원이라는 역대 최고의 쟁의 관련 민사배상 판결이 내려진 점에서 보듯이 법원도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언제나 정부나 사측과 마찬가지로 몰상식 일변도다. 통상임금 판결이라는 것은 사실 이미 오래 전에 확립된 판례의 확인에 불과했을 뿐 아니라, 외국에서는 물론 악법 중 악법이라는 우리의 노동법 해석으로도 지극히 상식적인 기술적 해석에 불과한 것으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노동법의 '노'자도 모르는 정부의 몰상식을 확인한 점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법원은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해서는 여전히 지극히 몰상식적이다. 헌법상 단체행동이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엄청난 민ㆍ형사 책임을 부과한다. 수출 역군인 기업을 노조가 망친다는 법리 아닌 법리에 의해서다. 노동3권을 침해하는 것이 부당노동행위인데도 이 말은 노동 측의 부당행위로 오해되고 심지어 국가가 부당노동행위를 버젓이 자행해도 용인되는 몰상식이 판을 치고 있다. 민주주의 헌법을 가지고 있는 현대 국가라면 어디에서나 당연히 인정되는 인권이 우리나라에서는 범죄라고 하는 몰상식으로 지배되고 있다. 그런 몰상식의 법 제도와 법 기구가 버젓이 활개를 치고 있음에도 세계화니 헌법이니 자유민주주의니 운운하는 것을 보면 정말 가소롭기까지 할 정도다.

도대체 철도파업이 왜 불법이고 범죄라는 것인가. 민주국가에서는 참으로 보기 어려운 지극히 복잡한 법 절차를 모두 다 거쳤는데도 뭐가 불법이라는 것인지 참으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철도파업의 목적이 철도 민영화 반대라고 해서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민영화가 이뤄지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당연히 노동조합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불법일 수 없다. 정부에선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미 외국에서 외국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민영화할 것이라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었다. 통상임금 문제도 외국기업에게 답한 발언에서 문제가 빚어졌다. 그런 발언은 70년대 무역 입국에 방해되는 노조를 억압해야 건전사회가 만들어진다는 논리의 연장이다. 노조 없는 삼성공화국을 아예 나라 전체로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래서 노조 없는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 요즘 노동정책이나 노사관계를 보면 1970년대를 방불케 한다. 귀신이 몰상식의 화근인가.

박홍규 영남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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