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나 할까?" 집주인 K가 제안했다. 마침 넷이 모여 노닥거리고 있었으니 적당한 인원이라, 둘둘 편을 나눠 담요 주위에 둘러앉았다. 우리 편 말판은 내가 맡기로 했다. 짝이나 나나 별 생각은 없었다. 아무려면 어때. 그 길이 그 길인 걸. 그런데 세 바퀴쯤 순서가 돌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왜 업어? 잡히잖아." "괜찮아. 안 잡힐 거야." 이런 식이었다. 짝은 하나씩 차근차근 나아가자는 주의였고, 나는 말들을 업고 가서 한꺼번에 끝내자는 주의였다. 결국 내가 말판을 주도한 두 판은 참패로 끝났다. 짝이 비아냥거렸다. "요행이나 바라다니 넌 기본도 몰라." 나도 이죽거렸다. "너 완전 보수적이더라? 모험도 할 줄 알아야지 말야." 어쨌건 패배의 책임을 지고 나는 말판을 짝에게 넘겼다. 우리의 옥신각신은 이어졌지만 이번에 말들을 움직인 건 짝의 신중한 손. 우리는 다음 판을 아슬아슬 이겼고 그 다음 판을 아깝게 졌다. 1대 3. 게임 끝. 내기로 걸었던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며 나는 우습게도 보수주의의 미덕이랄까, 뭐 그런 것을 생각했다. 게임에서야 모험을 하다 망해봤자 아이스크림이나 사면 되지만 삶에서야 어디 그런가. 사소하나마 이제껏 일구어온 것들을 함부로 여기지 않으며 한 발씩 나아가는 것. 그냥 지키는 게 아니라, 지키면서 나아가는 것. 그게 보수주의의 온화한 미덕 아닐까. 시대를 역행하려는 건 보수주의도 뭣도 아닐 거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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