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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2월 24일] 마르크스주의자의 친구인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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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36.5°/12월 24일] 마르크스주의자의 친구인 교황

입력
2013.12.23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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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 사상은 틀렸습니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선한 마르크스주의자를 많이 만났으며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려도) 화가 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달 이탈리아 일간 라 스탬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교황이 지난달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는 입장을 담아 발표한 권고문을 두고 미국 보수 성향 방송인 러시 림보가 "교황의 말은 순전한 마르크스주의"라고 비난한 데 따른 반응이다. 교황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의혹(?)을 부인했지만 듣는 이의 관심은 절로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쏠린다. 교황의 백기투항을 기대했을 보수파에게 이만큼 당혹스러운 답변이 또 있을까.

평생 신을 받들어온 사제에게 종교 또한 물질의 작용이라는 유물론 사상을 들이대는 무리수는 교황을 지켜보는 일각의 불안 심리를 은연히 드러낸다. 교황은 3월 즉위 이후 전임자들에 비해 한결 급진적인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빈부격차에 대한 비판은 특히 매섭다. "과거엔 유리잔이 흘러 넘치면 가난한 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믿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유리잔이 가득 차면 마술처럼 잔이 더 커져버린다"며 성장우선론의 핵심인 '낙수효과'를 일축했다. 교황청이 지정한 '세계 평화의 날'(1월 1일)에 앞서 미리 공개한 담화문에서는 "엄청난 연봉과 보너스는 탐욕과 불평등에 기반한 경제의 상징"이라며 "정부 정책을 통해 빈자와 부자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고 했다. 보수주의자들의 최대 표적인 복지정책에 막강한 우군이 나타난 셈이다.

교황의 지향은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다. 교황이 이 점을 워낙 강조하다보니 교황청 주변에선 "교황이 가난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조만간 바티칸 매각을 발표할 것"이라는 뼈있는 농담도 돈다. 가난을 개인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이 있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체제 유지를 원하는 이들과의 갈등이 빚어지게 마련이다. 추기경 시절 인터뷰에서 교황은 인권유린, 착취, 교육ㆍ식량 부족 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두고 "교회가 정치한다"고 폄하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정치를 합니다. 그러나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정치적 역할'을 당당히 내세우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지하듯 최초의 중남미 출신 교황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난 그는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50년 넘게 조국에서 사목했다. 좌ㆍ우파 정부와 군부 독재, 경기 호황과 외환 위기가 번갈아 찾아든 아르헨티나에서 말이다. 이 질곡의 땅에서 교회는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받아 빈자의 투쟁을 옹호하는 해방신학부터 군부독재정권의 좌파 학살에 부역한 극우파 사제까지 이념에 따라 극명히 갈렸고, 중도파로 분류되는 교황 역시 이런 조건 속에서 신앙의 방향을 모색해왔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이 교황의 지인들을 인용해 "빈자에 대한 교황의 관심은 부분적으로 페로니즘(후안 페론 집권기의 사회민주주의 정책)의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전한 것은 교황이 사제이기 전에 아르헨티나인이라는 엄연한 사실을 일깨운다.

예수는 교회를 짓는 대신 생애 내내 가난한 사람들의 현장을 돌아다녔다.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을 때는 "모든 이를 위한 기도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며 채찍을 휘둘러 상인과 환전상을 내쫓기도 했다. 바티칸 중심의 교회에서 벗어나겠다며 사람들이 모인 자리를 즐겨 찾고, "이런 시기에 (하느님의 은총을 실천하는) 혁명가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설파하는 교황의 행보는 그가 사표로 삼고 있는 예수와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교황은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말한다. 성탄절을 앞두고 교황을 위해 기도하는 일은 잊었던 유토피아의 꿈을 한번쯤 되새겨보는 일이란 기분이 든다.

이훈성 국제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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