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 넘는 체포 작전, 출입문 파손, 최루액 분사, 강제 연행…. 22일 경찰이 철도노조 파업 주동자 검거를 위해 민주노총 본부가 있는 서울 정동 경향신문 건물 안팎에 경찰관 5,500여명을 투입, 대대적인 작전을 벌였다. 그러나 건물 안에 체포 대상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최종 확인한 경찰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경찰은 정확한 정보도 없이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민주노총에 대한 첫 공권력 투입이라는 무리수를 둠으로써 경우에 따라 직권남용이나 불법 주거침입 등 법적인 책임까지 져야 할 위기에 처했다.
경찰은 휴대폰 위치추적 등을 통해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 등 지도부 9명이 경향신문 건물 13~16층에 입주한 민주노총 사무실에 은거하고 있다고 판단, 이날 체포에 들어갔다. 일요일 오전 긴장이 풀어진 틈을 타 검거하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은 앞서 16, 18일 발부됐다.
하지만 경찰의 작전은 너무나 쉽게 드러났다. 민주노총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0일부터 경향신문사 인근에 경찰을 배치하는 등 경계를 강화했고, 22일 오전 일찍부터 경찰 버스가 속속 도착했다. 민주노총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고층에서 내려다 보면 경찰 작전이 임박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셈이다. 철도노조 지도부는 오전 8시를 전후해 급히 다른 곳으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작전을 벌였다.
민주노총은 이날 체포 대상자도 없는 상황에서 수색 영장 없이 노총 사무실에 강제 진입한 것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수색 영장이 기각됐는데, 체포영장만 갖고 강제 진입을 시도한 것 자체가 불법이므로 그것을 저지한 조합원들에게 공무집행 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체포영장만 갖고 잠금장치를 해제하거나 파손할 수 없다"면서 "1층과 13층 등 출입문을 파손하고 진입한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라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이날 경찰의 행위에 직권남용, 건조물 침입, 기물 손괴, 불법 체포 및 감금 등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형사소송법에서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서는 수색영장 없이도 타인의 주거지 등을 수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기물 파손 등 행위는 향후 법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견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타인의 주거지에 들어가는 것은 위법이 아니다"면서 "다만 체포 대상자가 주거지 출입을 거부한다고 수사기관이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키는 등 불법 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아직 판례가 없어 소송을 통해 판단을 받아 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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