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기 자체가 달라진 北중국식 개량 악기 사용하고민요마저 서양식으로 발성다행히 퉁소는 변하지 않아서로 소통 가능한 부분 남아● 국악으로 똘똘뭉친 가족한국무용·태평소·해금 등아내와 자식들도 장기 가져"우린 특별한 연습이 없어요"함께 공연하며 시너지 효과 내● 인간문화재 지정 문제세간의 평과 선호도에도문화재청은 지정에 소극적"전국적으로 제자들 있는데…아쉬움 있지만 순리 따라야죠"
과연 얼음장 밑으로도 물은 흐르는 것일까. 북한의 장성택 처형 등으로 초래된 삼엄한 정치의 시간을, 문화의 부드러운 시간은 어떻게 관류해 나갈까. 대를 이어 국악의 업을 감당해 오고 있는 대금 명인 원장현 일가를 만나 그 답을 구해 보았다.
냉각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기자는 국악이 이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민족의 공감대가 여전히 작동하는, 몇 안 되는 분야일 것이라는 강력한 느낌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모든 가족들은 차분히 각자의 견해를 밝혀 나갔다. 네 개의 뜻이었지만 모이면 커다란 하나가 될 것 같은….
"완전히 다른 장르의 음악이다. 아예 토리(성음 체계)가 다른, 또 다른 지역의 음악"이라는 아들의 말에 딸은 "우리의 국악도 많이 변했다"며 두 진영의 현실적 괴리를 새삼 확인했다. 자신의 적통을 잇는 후배들의 말에 아버지 원장현은 "이제 북한은 악기 자체가 다르다"며 " 중국식 개량 악기에 민요마저 서양식으로 발성한다"고 덧붙였다. 반 세기 넘게 금 긋고 살아온 두 집안의 판이한 내면을 새삼 느낀다.
같은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의 시간 계산법은 다른 모양이다. 부모는 문화의 관점으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은근히 자식이자 후배들을 종용하는 눈치다. "그래도 서로 소통 가능한 부분을 찾아야 한다"는 아내의 말을 남편은 "지난해 연변 가서 연주했을 당시 퉁소는 변하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받쳐 준다.
네 식구 모두가 국악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가진 원씨 일가. 저 같은 견해가 주제 넘지 않다. 부인 조경주(59)씨는 해금ㆍ가야금ㆍ한국무용을, 아들 완철 씨(39)는 대금ㆍ아쟁ㆍ태평소ㆍ북ㆍ장고를, 딸 나경(28)씨는 해금ㆍ가야금ㆍ경기 민요를 각각 장기로 한다. "음악이니 (남과 북은)서로 소통 가능할 거예요." 어머니는 끈을 결코 놓지 않을 태세다.
유명한 대금에다 거문고ㆍ태평소ㆍ아쟁ㆍ가야금까지 대가의 기량으로 주무르는 원장현씨까지 합한다면 이들 가족은 국악 오케스트라가 부럽지 않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절로 떠오를 지경이다. "우리는 특별히 연습할 필요가 없어요. 곧바로 올라가서 하면 끝나죠." 완철씨의 말에 어머니는 "보통은 짜여진 음악에 춤이 따라가는데 내 경우는 춤에 음악이 따라온다며 댓구를 만든다. 왁자하니 웃음꽃이 핀다.
헌법재판소 옆에 있는 그의 금현(琴玄)국악원은 그 자체로 완전히 자족적인 공간이다. 1층 카페는 공연장 , 2층은 혼자 쓰는 공간(농담조로 자칭 '원장현류 대금 산조 본부' ), 지하가 금현국악원이다. 지하 1층은 훌륭한 연습 공간.
그 '본부'는 주인의 취미가 이미 호사가의 수준은 아니라는 사실을 웅변한다. 암펙스, 테크닉스 등 다양한 오디오에 다양한 전문 녹음기(릴 테이프, 디지털), 16채널의 콘솔 등은 가히 전문가급이다. "노년에 전수관을 지은 뒤 거기다가 기념관 하나 붙여 전시할 것들이죠."고음반 복각에 선구적 역할을 한 음반사 신나라 레코드사의 자문위원답다.
앞으로 이들의 가무악은 어떻게 변할까? "즉흥성 강한 시나위의 느낌이 강한 대중적 산조인 원장현류의 산조를 동세대와 공감하는 음악으로 만드는 일에 주력해야죠." 아들의 말이다. 시류에 치이기 일쑤인 국악을 붙들고 분투한 아버지의 25년을 똑똑히 지켜 본 그는 부친의 현재를 "최고 수준의 기량에서 왕성히 활동하시는 시기"로 규정한다.
이들은 뭣보다 동지다. 긴밀한 친교를 뜻하는 지음(知音)이라는 관용어를 형식적으로, 실질적으로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가까이는 지난 7월 운현궁 이로당에서의 공연에서 조씨는 식구의 반주에 맞춰 춤(살풀이, 입춤 등)까지 춰 보였다. 10월의 북촌 뮤직페스티벌 때는 1층 카페를 터, 원 씨의 대금과 조 씨의 입춤이 어우러졌으니 부창부수라는 말이 그들을 위해 지어진 말인 듯싶었다.
1985년, 원장현류 대금 산조가 만들어졌다. 대금을 연주한 아버지(원광준), 2011년 작고한 숙부이자 거문고 산조보유자(원광호) 등은 일본에 사는 강태홍류 가야금 산조의 여동생 경애씨 등과 함께 이 가계의 적통을 밝혀주기 족하다. 국립국악사 양성소_서울대 국악과 _국립국악원 정악단 등을 거쳐 현재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으로 있는 아내까지 합하면 두말 할 나위조차 없다.
호방한 기품을 닮아서일까, 원 씨는 세계 만방의 음악은 그 이상을 시나위 형식에 둔다고 굳게 믿는다. 철저히 연주자 중심의 아우라를, 그는 전적으로 신뢰한다. 현대음악의 걸작으로 인정 받는 윤이상의 '예악'을 전통이 내면화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비판하는 근거다. 유럽 등지에서 한국의 전통 연주단을 부르면서 왜 "시나위를 오리지널로 갖고 오라"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형도, 틀도 없이 즉흥적으로 맞춰 가는 조화의 멋이 진짜죠." 고향인 전남 담양 소쇄원의 풍광을 머리 밖으로 끄집어 내 지은 곡 '춤산조'는 그 적확한 예다. 학교에서 정악 산조를 제대로 배운 자식들이 " 결국 시대를 호흡하는 음악이 답"이라며 입을 모으는 데는 아버지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 지점, 아버지 원씨는 "국악 하면 일단 산조를 잘 해야 한다"며 새삼 확인한다.
두 자식 역시 "정악 산조는 교육의 기본"이라며 받는다. 아버지는 "박범훈씨가 곡을 잘 쓰는 것은 피리 산조가 기본이 됐기 때문"이라며 국악의 법통을 새삼 확인했다. 온고지신의 교훈이 가벼이 여겨지는 세태에 대한 이들의 경고는 한결 같다. 재즈 뮤지션 이정식씨가 언급된 것이 이 지점. "뉴욕에서 미국의 재즈 뮤지션들과 연주할 때, 색소폰으로 태평소 소리를 내라고 조언했죠." 원씨의 선택에 방점을 찍어주듯 미국인들의 각광이 쏟아졌다.
그의 제자는 각 시ㆍ도의 국악계 주요 자리마다 다 있다시피 한다. 서울대 임재원 교수, 한양대 안성수 교수, 수원대 임진옥 교수, 경북대 윤병천 교수, 전북대 예대 학장 이화동 교수 등이 활약 중이다. "실력 있는 제자들이 찾아와 공부했고, 열심히 가르치기도 했고…." 애제자 중의 하나인 아들은 자신의 현재를 목표치의 5~6할 정도에 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나 산조면 산조다 시나위면 시나위다, 굳이 나누라면 아들은 즉흥성을 요구하는 시나위 쪽이다. 정악을 하든 퓨전을 하든, 글로벌이라는 시대적 요청을 감당해 낼 새 국악이 어디엔가는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감내해 온 세월의 연단은 짐작만 할 뿐이다. 공식 인간문화재 지정의 문제다. 세간의 평과 선호도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진작에 이루어져야 했을 일이다. "대금 산조의 인간 문화재 보유자는 이생강류의 이생강과 강백천류의 김동표 등 두 사람이 있어 지정이 급할 것 없다"는 것이 문화재청의 입장이다. 더욱이 특수공예 분야처럼 희소하지도 않은 데다 대금 산조를 굳이 세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자는 문화재청의 입장이 겹친다. 문화재 관련 법규가 제정되던 1960년대 당시는 국악으로만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어 명맥을 잇게 한다는 취지였으나 지금은 상당히 활성화해 했으니 정부로서는 추가 지정이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엄정한 오디션 제도 덕분에 요즘 문화재 관련 제도는 투명하죠." 정작 덤덤한 본인의 말. 정당한 장치 아래서 제자를 기르며 순리에 따라 때를 기다리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를 아는 지음(知音)들은 말한다. 시스템의 제약과는 애초 인연 없는 그는 본질적으로 파토스적이다.
"워낙 호인에다 호방하다 보니…." 그의 성품이 아니라, 대금 소리를 말하는 것 같다. 화려한 기교 대신 대금 본연의 소리에 충실한 질박미가 바로 그러하다. 그래도 원 씨는 한 가지 아쉬움은 못 감춘다. "다만 법적으로 전수장학생 아니어서 이수자를 낼 수 없다는 아쉬움은 어디에도 비길 수 없네요. 전국적으로 제자가 산재해 있는데…."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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