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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기당 1억원꼴 '연봉 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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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기당 1억원꼴 '연봉 홈런'

입력
2013.12.2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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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고 3학년에 재학중이던 2000년 추신수(31)는 국내 야구에 눈을 돌리지 않고 곧장 태평양을 건넜다. 그리고 13년이 흐른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야구를 잘 하는 선수들이 모인 메이저리그에서도 톱클래스로 우뚝 섰다.

추신수가 텍사스와 맺은 7년간 1억3,000만달러(1,379억원)의 초대형 FA 계약은 여러 가지로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선 박찬호(40ㆍ은퇴)와 스즈키 이치로(40ㆍ뉴욕 양키스) 등 한국과 일본 야구의 상징을 넘어선 동양인 메이저리거 역대 최고액이다.

이치로가 2007년 시애틀과 계약을 연장하면서 받은 5년 9,000만달러(947억원)를 훌쩍 뛰어넘었고, 2001년 박찬호가 텍사스와 5년간 계약하면서 받은 6,500만달러(689억원)의 두 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추신수는 2014~15시즌 2년간은 연봉 1,400만달러(149억원)를 받지만 2016~17시즌엔 2,100만달러를, 2018~20시즌엔 2,000만달러를 챙긴다. 내년 연봉을 기준으로 올해 뛴 154경기를 소화한다고 가정하면 타석당 2,100만원을, 경기당 9,675만원을 손에 넣는다는 계산이다. 웬만한 직장인 연봉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박찬호가 한양대 재학 중 메이저리그에 직행한 반면 추신수는 마이너리그의 눈물 젖은 빵을 곱씹으며 밑바닥부터 올라선 인간 승리의 드라마와 같다. 추신수는 부산고 3학년이던 2000년 8월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와 최우수투수상을 석권하며 한국의 우승을 이끈 뒤 세계 야구의 중심에 포착됐다.

빅리그 구단의 러브콜 끝에 그 해 12월 시애틀과 계약금 137만 달러(당시 13억원)에 입단 계약을 했다. 학창시절 투ㆍ타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냈던 추신수는 구단의 권유로 타석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그러나 동양인 유망주에게 메이저리그의 벽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01년 루키리그에서 미국 야구를 시작한 그는 연봉이 1만달러도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2002년과 2004년, 2005년에 마이너리그 퓨처스 올스타에 뽑히면서 급성장했고 2005년 4월21일엔 메이저리그 데뷔전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번엔 당시 시애틀의 주전 우익수던 이치로라는 슈퍼스타가 추신수의 앞길을 막았다.

추신수는 결국 2006년 7월26일 클리브랜드로 떠밀리듯 트레이드되면서 인생 역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적하자마자 호타준족의 자질을 드러낸 추신수에 대해 클리블랜드는 2007년 연봉을 38만3,100달러(4억4,000만원)로 올려주며 주전으로 중용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팀의 간판으로 자리를 굳힌 추신수는 2009년(타율 3할, 20홈런, 21도루)과 2010년(타율 3할, 22홈런, 22도루) 2년 연속 '3할타율-20홈런-20도루'를 달성하며 유망주 꼬리표를 완전히 떼고 '파이브툴(파워, 정확도, 주루, 송구, 수비) 플레이어'로 인지도를 높였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추신수는 2011년 연봉 계약부터 제값을 받기 시작했다. 2010년 연봉 46만1,100달러(5억5,000만원)에서 약 8배가 뛴 397만5,000달러(44억원)를 손에 쥐었고 이후 꾸준한 성적과 함께 연봉 상승폭도 점점 커졌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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