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 이념인 ‘선군(先軍)’ 사상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김정은 체제의 가장 강력한 권력 기반인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처형 이후 북한의 권력추가 군부 쪽으로 옮겨지는 기조가 확연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선군은 자주통일 위업 승리의 확고한 담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선군정치는 그 동안 미국의 침략책동을 막는 투쟁에서 위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문은 “(선군정치가) 조선반도의 평화와 민족의 안전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는 철의 방패로 위용을 떨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성택에게 빼앗겼던 경제관련 사업의 주도권을 군부가 되찾아가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북한 조선중앙TV는 전날 “평양에서 건군 사상 처음으로 조선인민군 수산부문 열성자회의가 진행된다”고 보도했다. 중앙TV는 “이번 회의는 군인들에 대한 후방사업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며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한 행사임을 강조했다.
수산물 수출입 사업은 전통적으로 군부가 관장하던 분야였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해 초부터 북한 전역의 양식ㆍ어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군의 기득권을 박탈했고, 상당수 사업권이 장성택 휘하에 있던 당 행정부로 넘어갔다. 일각에선 행정부 산하 승리무역의 수산물 사업권을 놓고 인민무력부와 행정부간 충돌이 장성택 숙청의 도화선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인지 김정은은 장성택 처형 이후 현지지도를 군 관련 경제활동에 집중하며 군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16일 김정은의 공개활동으로 보도한 ‘8월25일수산사업소’는 인민군 제313군부대 산하 기관이다. 수산부문 열성자회의 역시 김정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최근 2인자로 떠오른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을 띄우는 것도 선군정치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노동신문은 20일 최룡해의 부친이자 빨치산 1세대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이름을 직접 거론했다. 1963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백두산을 찾았을 때 최현이 그림자도 밟지 않으려 급히 몸을 옮겼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충신의 전형으로 묘사했다. 장성택과 달리 빨치산혈통인 최룡해만이 3대 백두혈통을 보위할 수 있는 적자임을 은연 중 드러낸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최룡해는 군에 대한 당적 통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충성심을 보여 위상이 당분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향후 군부가 장성택 처형에 따른 북한 상층부의 권력 진공상태를 어떻게 메울지는 신년 공동사설을 통해 구체화할 전망이다. 앞서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중앙추모대회에서도 선군이란 용어는 최다인 19회나 등장했다. 선대의 지도사상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도 선군정치를 통치이념으로 만들기까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적극 활용했다”며 “김정은 역시 유일 영도체계를 확립하려면 군부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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