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그림은 재벌의 옆 자리 친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수억 원을 호가하는 것이 예술 작품만 있는 건 아니다. 100만원에서 싸게는 10만원 대 작품 중에서도 거실의 온도를 바꿔줄 수 있는 나만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판매하는 전시가 연달아 열리고 있다. 내년 1월까지 청담동 갤러리세인에서 열리는 '예술가의 선물'전시에는 작가 50명의 평면, 입체, 공예 작품 200여점이 친근한 가격으로 선보인다. 제 돈 주고 미술 작품을 구입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나의 첫 번째 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10만원부터 100만원 내외의 작품들을 제안한다. 28일 끝나는 1부 전시에는 김영헌 작가의 고양이 유화, 임채욱 작가의 말 사진, 노준 작가의 나무 조각, 이수종 작가의 찻잔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나와 있다. 내년 1월 7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2부 전시에서는 김구림, 김종인, 신수진 등의 작품을 관람하고 구매할 수 있다.
갤러리세인 정영숙 대표는 "연말이면 미술 소품전이 자주 열리는데 작은 크기나 저가를 강조하기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예술을 향유하자는 취지로 전시를 기획했다"며 "작품에는 예술가의 삶 전체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작품을 산다는 것은 예술가를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서울 와룡동에 있는 갤러리 일호는 26일부터 내년 1월 14일까지 안윤모, 오유미, 최지인, 한상윤 등 작가 4명의 소품 판매전을 진행한다. 작품가는 최저 10만원에서 최고 300만원까지이며 명함 케이스 같은 상품은 5,000~1만원대에 나온다. 부엉이와 책 그림으로 유명한 안윤모 작가는 그림 14점을 내놨다. 캠벨 수프 깡통 안에 들어간 부엉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부엉이 등 작가 특유의 동화 같은 그림 스타일이 잘 표현된 작품들이다. 오유미 작가의 잡지와 신문지로 만든 강아지 조각, 최지인 작가의 파스텔 톤 곰 인형 그림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다. 한상윤 작가는 명품 옷을 입은 돼지 그림을 그린다.
샘터갤러리, 사진 전문 갤러리 나우, 서울옥션의 프린트베이커리에서 열리는 판매전도 22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를 기획한 이앤아트 이규현 대표는 "연말연시, 결혼, 승진 축하 선물로 난이나 과일 박스를 보내던 사람들이 예술 작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며 "원래 15일까지인 전시를 일주일 연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나래 작가가 만든 조각 에디션 '헬로 스노우맨'은 귀여운 모양과 10만~20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끌었다. 유화를 그리는 김형곤 작가는 원화 작업을 하기 위해 그렸던 습작을 내놨다. 원화 가격은 100만원이 넘지만 습작은 4만~10만원대에 살 수 있다. 싼 가격이 아니더라도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심했던 과정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유명 사진작가인 구성연도 에디션을 여러 개 찍은 사진 작품을 20만원대에 선보였다.
이 대표는 "난이나 화환 같은 선물은 누가 보낸 것인지 기억에 잘 안 남지만 그림은 선물한 사람의 취향이 반영돼 기억에 뚜렷이 남는다"며 "예술을 투자가 아닌 소장 개념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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