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orld] 휴대폰 통화하며 초원 내달리는 징기즈칸의 후예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orld] 휴대폰 통화하며 초원 내달리는 징기즈칸의 후예들

입력
2013.12.20 12:52
0 0

'초원의 나라' 몽골은 햇빛이 비추는 날이 연 평균 250일 정도나 된다. 강수량이 적지만 몹시 추운 겨울에도 강한 햇볕 덕분에 풀이 자랄 수 있어 광대한 초원이 형성됐다. 그래서 유목민이 중요한 재산인 가축을 몰고 다니며 돔처럼 생긴 몽골식 텐트 '게르'에서 생활할 수 있다. 이처럼 선조 때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유목민들은 몽골 전체 인구 304만 명(2010년 기준) 중 약 80만 명이다. 이들의 삶은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살았던 것과 거의 똑같다. 21세기가 시작됐을 때만 해도 몽골의 유목민은 현대화된 전력 사용이 어려워 문명의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 몽골 정부의 노력으로 2013년 현재 유목민의 약 70%가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게르 위에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에너지를 얻는 '가정용 휴대 태양광발전 시스템(SHS)' 덕분이다. 몽골 중서부 아르항가이 아이막(우리나라의 도에 해당) 지역을 떠도는 유목민 보르도 SHS를 이용한다. 그는 "SHS로 전기를 생산해 텐트 내부의 조명시설, 휴대전화, 냉장고, TV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장 업데이트된 날씨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유용하다. 보르는 "날씨 정보는 가축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유목 생활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며 "이런 일들이 전기를 이용하기 전에는 매우 어려웠지만, 지금은 거의 도시에서 사는 것 같다"고 흡족해 했다.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있게 된 것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자녀를 둔 유목민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 보르는 "유목민 자녀의 대부분은 기숙사 생활로 교육을 받고 있다"며 "언제든지 기숙사에 있는 자녀와 통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역시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는 자녀와 연락한다. 전기는 또 응급 상황 시 가장 가까운 마을을 찾아 헤맬 필요 없이 의사의 진찰과 의료서비스도 가능하게 했다.

유목민 사회의 삶의 질 개선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프로젝트 시작 전 유목민들은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여겨지는 휴대전화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90%가 사용하고 있다. 또, 유목민의 70%는 전기를 사용하면서부터 생산성이 늘어났고, 각종 정보를 제공하는 TV를 보유한 유목민 가정도 70%로 급증했다.

윤택한 삶의 원동력인 태양광발전기의 보급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몽골정부는 야심 차게 '전국 10만 유목민 가정 태양광 전력화 프로그램'을 추진했지만 곧 난관에 부딪혔고, 이 때 세계은행이 도움을 제공하면서 태양광발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카타르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프로젝트 시작 5년인 2005년까지 3만 가정이 SHS를 설치했지만 그 이후 사업은 부진에 빠졌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몽골정부가 사업을 순조롭게 진행하는 것뿐만 아니라 10만 가정에 SHS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일정 비율로 꾸준히 실행하는 일에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은 2006년 각 가정에 태양광발전기 초기 설치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고, 판매 후 유지보수를 책임지기로 했다. 이를 위해 세계은행은 서비스센터를 전국 21개 아이막에 최소 1곳 이상씩, 모두 50곳을 세웠다. 세계은행 에너지 담당 수석연구원이자 보고서 작성자인 미가라 자야와데나는 "전력화 사업 덕분에 현재 시골에 사는 유목민 중 절반 이상이 전기를 사용하게 됐다"며 "목표치(35%)를 훌쩍 넘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사업자, 판매, 서비스센터 등 전체적인 사업이 아직도 가동 중이라 여전히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거나 다양한 기기를 지원하는 업그레이드된 SHS의 구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유목민들에게 태양전지판은 여전히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비싸다. 태양전지판 가격은 제조국가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비싼 제품은 독일, 일본, 중국에서 생산된 것으로 15만~80만 투그릭(한화 9만~50만원)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몽골의 1인당 국민소득(GDP)이 3,880달러(408만원)인데, 보통 유목민들은 이 보다 소득이 낮은 점을 감안하면 꽤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몽골 중북부 흡스걸 아이막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바트사이칸도 "태양전지판을 정말 사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구매하지 못했다"며 "언젠가 꼭 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SHS프로젝트는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태양광발전이 유목민들이 그 동안 전력을 얻어온 디젤 발전기와 게르 내에서 붉을 밝히고 난방을 했던 등불과 난로 등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자야와데나는 "SHS는 기존에 사용해 온 등유 디젤 양초 등이 배출하는 오염물질이 없는 청정에너지원"이라며 "호흡기 질환과 다른 질병을 유발하는 실내 연기도 감소시켰다"고 말했다. 또 "현대화 초기단계부터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성장하는 개발도상국에 저탄소배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몽골 유목민의 전통적 생활양식 붕괴를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강조했다. 자야와데나는 "고정된 전기 배선을 이용한 전력화는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의 삶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야 하지만, 쉽게 조립과 결합이 가능한 SHS는 반대로 기술이 유목민의 삶에 순응했다"며 "이는 전통적인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유목민들이 전기를 사용해 각종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서도 수천 년간 지속된 생활양식을 보존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