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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12월 21일] 필사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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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12월 21일] 필사의 추억

입력
2013.12.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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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보만큼 만든 이의 개성이 듬뿍 담긴 매체는 드물다. 음식을 맛보기 전 향과 빛깔을 살피듯, 대자보 앞에 서면 글씨체와 글자 크기, 여백부터 훑어보곤 한다. 필사본(筆寫本) 소설을 읽으며 생긴 습관이다.

판각본과 활자본 이전에 필사본 소설의 시대가 있었다. 탐독한 소설을 간직하고 싶다면 그 작품을 한 글자 한 글자 베껴 적는 수밖에 없는 나날. 최근 등장한 대자보에도 필사의 전통이 흐른다. 대자보를 써본 사람은 알리라. 백지를 펼쳐놓고 단번에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가는 이는 없다. 알리고 싶은 글을 작은 공책에 정리한 뒤 그것을 큰 전지(全紙)에 또박또박 필사하는 법이다. 글씨를 가지런히 쓰기 위해 종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접기도 하고 긴 자를 밑줄처럼 대기도 한다. 강조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엔 밑줄을 긋거나 색깔을 바꾼다. 여백도 아까워 그 글을 쓴 단체나 개인의 상징을 기호나 그림으로 채운다. 처음부터 끝까지 방심하면 안 된다. 글자 하나만 잘못 적어도 깨끗하게 수정하기 어렵다.

필사본 소설과 '안녕들 하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들의 공통점은, 필사자가 읽는 이이면서 쓰는 이라는 점이다. 을 예로 들어보자. 이 작품이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야기임을 읽어 아는 필사자는 붓을 들고 베껴나가다가 흥미로운 대목을 만나면 더 많은 대화와 사건을 집어넣기도 한다. 그러나 시시한 대목은 줄이거나 아예 빼버린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필사본 소설의 이본(異本)이다. 작품 제목과 줄거리는 바뀌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무수한 차이가 만들어진다. 이 언제나 춘향전'들'로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자보에 참여한 이들도 마찬가지다. '안녕'을 묻는 대자보를 읽은 후 저마다의 사연을 그 질문과 답 사이에 빼곡하게 담는다.

필사의 핵심은 공감과 자발성이다. 소설이 좋아 밤새 옮겨 적는 노력을 아끼지 않은 필사본 소설의 독자처럼, 대자보 작성자들도 최초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여 시간과 돈을 자진해서 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자보는 인터넷 공간의 글쓰기와는 다른 경험을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선사한다. 화면을 띄우고 자판을 쳐서 정해진 칸을 메우는 것과 전지를 펼쳐두고 펜을 힘껏 쥔 뒤 쓰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내가 쓴 대자보를 붙이고 타인의 대자보를 읽기 위해선, 대자보가 붙은 벽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 곳의 기온과 바람과 빛과 소리와 냄새 그리고 곁에 나란히 선 모르는 이들까지, 대자보를 읽는 과정에 포함된다. 새로운 감각적 실존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필사본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가격을 매겨 사고파는 소설과는 다른 가치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왜 소설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다양한 글씨체가 뒤섞인 의 말미에 짧은 필사 후기가 덧붙었다. 결혼한 딸이 아우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친정에 와선 을 베끼다가 마치지 못하고 돌아간다. 아버지는 소설 애독자인 딸을 위해 종남매와 숙질까지 불러 함께 필사를 마친 뒤 그 소설을 딸에게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는다. '아비 그리운 때 보라' 여기서 소설은 몇 천원의 상품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다. 소설이 이렇듯 인간과 인간을 잇는 선물이라면 평생 매진할 만하다고 느꼈다.

학창 시절 대자보의 달인을 만난 적이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그 선배가 쓴 대자보엔 더 많은 이들이 몰렸다. 선배에게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싱거웠다. 특별한 비결은 없고, 대자보로 옮기기 전 공책에 적은 문장을 열 번 정도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이다. 선배의 대자보를 다시 살폈다. 오직 검정, 단색으로 단정하게 써내려간 대자보에서 떨리는 단어 몇 개가 비로소 눈에 띄었다. 이미 아는 단어인데도 읽는 이를 멈추게 만드는 진심이 거기 담겼다. 목소리의 떨림이 손끝으로 고스란히 옮겨갔던 것이다.

대자보들 앞에 선다. '안녕하지 못합니다' 여덟 글자가 흐릿한 까닭은 내 눈에 담긴 눈물 탓일까, 쓴 이의 차오른 진심 때문일까.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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