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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12월 21일] 지금이 가장 젊은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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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12월 21일] 지금이 가장 젊은 때이다

입력
2013.12.2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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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아파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그들의 상처에 소금 뿌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외친다. "너나 아프고 청춘하세요! 우린 안녕하지 못하다고요!"허공에 주먹질도 하지 못하고 그저 답답한 마음에 벽서를 내걸었을 뿐이다. 그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우리 모두의 부끄러움을 깨우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을 고깝게 여기는 이들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낫살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생각이 어른스러워져야 어른다운 것을.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뜻밖에도 생각이 굳었거나 막힌 경우를 종종 겪게 된다. 이제 그 나이쯤이면 제법 높은 자리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처지이거나, 그 자리에서 자신의 경력을 마감하는 때가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의 생각은 딱 그 자리에서 멈춰져 있다. 그게 중년 남자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자신이 가장 잘 나갔을 때에 자신의 삶을 맞춰놓고 싶은 건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건 시간을 등지고 사는 것이다. 그 멈춘 생각이 심지어 나이든 사람들을 자신의 계층과 반대되는 정치적 입장을 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계급배반적 투표가 늘 그렇게 횡행해왔다. 자신의 현재는 아래의 99%에 머물러 있는데 생각은 예전 위 1%에 머물러 있거나, 혹은 마음으로나마 그 1%에 속하고 싶은 보상심리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나이 잘못 먹은 일이다.

나이가 들면 좀 더 유연해지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살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이 그런 관용을 마련한다. 예전에는 모나고 뾰족했던 성정도 부드러워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넓어져야 하는 게 나이든 사람의 몫이다. 그걸 누릴 수 있어야 행복하다. 그런데도 그러지 못한 건 나이 들어 밀려나고 있다는 절망감에 휘둘리는 것뿐이다. 지금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 가운데 가장 젊은 시간이다. 그런데 나이 몇 살 먹었다고, 전성기 최고의 시간에서 밀려났다고 절망하고 분노하며 생각이 멈춘다면 그건 제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좀 너그러워지자. 내가 누린 풍요와 성공의 기회를 우리 새끼들은 누리기는커녕 그 기회의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한 건 우리가 그들에게 저지른, 저지르고 있는 죄악이다. 그래서 미안하고 아프다.

열심히 일하느라 손가락이며 발바닥에 굳은살 박힌 게 지금의 어른들이다. 그들도 뼈 빠지게 일했다. 그러느라 삶을 누릴 여유도 실상 없었다. 그런 점에서 불쌍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젊은이들이 겪는 고통보다 더 크지는 않다. 정작 두려워해야 하는 건 심장과 뇌에 박힌 굳은살이다. 그걸 도려내야 한다. 내 새끼들이 '안녕하냐'고, '안녕하지 못하다고' 신음할 때 그 배후에 불순한 정치 집단이 있다고 날을 세우는 어른들을 보면 참 한심하고 안타깝다. 역사의식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니다. 내가 누린 풍요와 기회도 사실은 우리 부모들이 먹을 것 줄이고 입성 거의 무시하면서 새끼들 가르치는 데에 온 삶을 바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부모 세대가 누리지 못한 걸 누렸다. 그게 역사의 발전이다. 내가 누린 걸 내 새끼들이 더 많이는커녕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면 그건 역사의 퇴행이자 죄악이다.

우리 새끼들이 아프다고 외친다. 그런데 왜 시끄럽게 구냐고 구박하는 건 어른의 할 짓이 아니다. 가서 그들에게 무릎 꿇고 빌고 조용히 따뜻하게 그들을 껴안아줘야 한다. 생각이 멈추면 삶도 멈춘다. 그게 퇴행적 노인의 삶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 가운데 가장 젊은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그러니 예전보다 더 말랑말랑해진 심장과 유연해진 머리를 품어야 한다.

한 해가 저문다. 또 한 살을 먹는다. 그러나 그만큼 옹색해지고 편협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너그럽고 유연해진다면 그 나이 먹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굳은살 도려내고 새살 돋는 희망의 기쁨을 누려야 한다. 그게 시간에 대한 예의이고 삶에 대한 권리이다. 그런데 그 권리를 왜 스스로 외면하려는가? 지금이 바로 가장 젊은 그 시간인 것을.

김경집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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