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색 이벤트인 '일본 전화받기 대회'가 열린 한 강당. 가상 사무실을 꾸민 무대에서 전화 벨이 울리자 미타 오타니(26)가 수화기를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시간과 리듬을 조정했다. 그는 상대가 마치 앞에 있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웃고, 때론 미간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가 3분간 통화하는 사이 심판진은 목소리 톤과 크기, 속도, 발음 발성, 단어사용 등 전화예절을 면밀히 평가했다. 오타니는 별탈 없이 끝냈지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완전히 집중하지 않았고, 그 모습이 노출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일본 사무직 직원들은 이렇게 올해도 어김없이 '일본 최고 전화 응대자' 타이틀을 차지하려 경쟁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6일 "올해로 52회를 맞은 '일본 전화받기 대회'의 인기가 더욱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올해 참가자는 1만2,613명으로 10년 전에 비해 2배로 늘었다. 이메일과 문자, 모바일 메신저가 지배한 디지털 시대임에도 놀라운 발전이다. 주최 측은 그 인기비결을 친절의 중요성이 여전하고, 일부 고용주들이 기본 예절을 망각한 젊은이들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전문 콜센터와 아웃소싱이 늘어나면서 전화 응대를 전문으로 하는 업계 규모가 7,000억엔(약 7조원)으로 성장하면서 새로운 산업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유다.
대회를 후원한 일본 통신업체 'NTT east'의 마사유키 야마무라 사장은 개회사에서 "음성 통화가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콘테스트 참가자는 계속 늘고 있다"며 "전화예절, 순발력, 임기응변의 중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화 응대는 일본에서 중요한 업무다. 일본어로 된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검색하면 전화예절에 관한 전문 서적만 60권 이상이고 일반적인 비즈니스 예절 관련 서적도 수십권 나올 정도. 그 중 대부분은 "직장 여성이 멋지게 대화하는 법"과 같은 여성을 겨냥한 책이다. 책은 벨이 한 두 차례 울릴 때 전화를 받고, 더 늦게 받으면 먼저 사과하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 "이런 부탁을 드려 정말 죄송하지만…" 처럼 정중한 구어체를 사용하고, 마지막에는 상대가 끊는 것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전화를 먼저 끊는 것은 큰 실례다.
대회 참가자들은 거의 여성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에게 여성스럽고 활동적으로 들리게끔 고음으로 얘기할 것을 권한다. 비즈니스 예절 전문가인 아키코 미즈키는 "음계 '도레미파'에서 '파' 정도가 좋다"고 조언했다. 지난 5년간 대회에 직원들을 참가시킨 도쿄 SBI증권 콜센터의 케이코 나가시마 매니저는 "목소리가 로봇처럼 들리면, 상대를 편안하게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가시마의 후배 오타니(26)도 지난 6개월간 철저히 대회를 준비했다. 그는 샘플 응답을 쓰고, 거울 앞에서 연습하면서 적절하게 후두가 열리고 소리가 나오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그는 '정설'을 따르지는 않았다. 그는 "최근엔 고음으로 통화하는 것에 반발도 있다"며 "만화 주인공 같은 목소리는 싫다"고 말했다. 그는 상위 20위 안에 포함됐다.
NYT는 "일본은 1986년 업무 차별을 금지한 양성 평등법을 실행해 여성 고위직이 늘었으나, 아직 여성 관리직 점유율은 11%에 불과하다"며 전화 받기가 여전히 여직원의 몫으로 남은 일본 기업문화를 지적했다. 일본여대 직업 전문가 마치코 오사와는 "남성들은 대표직을 지배한 반면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보조업무, 사무직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변화가 감지되기도 한다. 대회에 참가한 에어컨제조업체 남자직원 다이킨의 히데카주 이시가키는 "성 구분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며 "지난 50년간 우리 회사 고위 관리직에 진출한 여성은 50%이상 증가했다"고 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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