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범위를 확대하는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나라의 복잡한 임금체계가 다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통상임금 범위에 대해 대법은 '정기상여금은 포함, 복리후생비는 배제'로 교통정리를 해줬지만, 수당만 무려 수십가지에 달하고 그 이름조차 생소할 정도인 복잡한 '문어발 수당'체계를 정리하지 않으면 앞으로 노사간 임금단체협상은 훨씬 더 힘겨운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사측은 임금을 올리더라도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복리후생관련 수당을 늘리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노조측은 어떻게든 정기상여금에 들어가는 수당을 늘리려고 할 것"이라며 "수많은 수당이 더 생겨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 있는 수당만해도, 이것이 정기상여금 성격인지 아니면 복리후생비 성격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게 많다. 19일 고용노동부와 경총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법정수당은 해고예고수당, 퇴직수당, 유급휴일수당 등 최소 10여 개가 넘는다. 여기에 직무수당, 가족수당, 식대수당 등 법정외 수당까지 더하면 업체별로 20~50개까지 수당내역이 늘어난다.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국내 A 자동차 제조업체의 경우, ▦위생수당 ▦체력단련비 ▦가족수당 ▦가정의 달 지원비 ▦귀향비 ▦김장보너스 등 법외수당만 11개에 달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임금을 많이 올린다는 이미지를 피하기 위해 사측과 노조 모두 기본급을 별로 손대지 않은 채 상여금과 수당만 늘려왔다"며 "그야말로 문어발 수당"이라고 말했다.
또 B의료원에선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가계안정비 등 이름만 들어선 도무지 용도를 알기 힘든 법외수당이 무려 20여 개나 된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그간 노사간 합의로 각종 수당들을 신설하면서 어떤 것이 정기적 급여이고 일시적 수당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복잡한 수당체계와 임금구조는 그 자체가 향후 임단협에서 타협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사측은 통상임금이 아닌 복리후생비라고 주장할 것이고, 반대로 노측은 사실상 정기상여금 성격의 수당이라고 주장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통상임금범위조정을 계기로 임금체계 개편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대한상의 주최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복잡한 임금체계를 빨리 단순화해야 한다. 정부도 이른 시일 안에 입법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실장도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할 수 있는 법률적 또는 제도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당을 줄여 임금체계를 단순화하는 방향을 놓고서도 사용자측과 노동계의 시각은 엇갈리고 있다. 사용자측을 대표하는 경총 관계자는 "임금과 생산성 간의 연계성을 높이려면 현재 연공급에 치우친 국내 기업들의 임금체계를 직무급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며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도 고정급이 아닌 성과급 위주로 바꿔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성과급을 확대시키겠다는 주장을 결국 통상임금을 줄이겠다는 '꼼수'로 보고 있어, 합의도출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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