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총선과 대선 당시 일부 국군사이버사령부 요원이 올린 정치 관련 글은 3급 군무원인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장의 '빗나간 과욕'이 빚은 결과라는 게 국방부 조사본부가 19일 공개한 중간 수사 결과의 핵심이다. 그러나 상명하복을 철칙으로 삼는 군 조직의 특성에 비춰볼 때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란 게 야권의 시각이다.
3급 군무원이 몸통?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사이버사령부가 창설된 2010년 1월 11일부터 올해 10월 15일까지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요원들이 인터넷에 게시한 글은 모두 28만6,000여건이었다. 이 가운데 2,100여건이 특정 정당 또는 정치인에 대한 옹호나 비판을 포함해 선거에 영향을 미칠 소지가 있었다.
가령 "서해에는 불법무법의 북한한계선(NLL)이 아닌 우리가 설정한 해상군사분계선만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지난해 10월 2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주장에 사이버사령부가 NLL 수호 의지를 천명한 것은 북한의 대남 선전ㆍ선동에 정상적으로 대응한 것이지만 "민주당 문재인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대통령 자격이 안 된다"는 트윗 글을 리트윗(재전송)한 것은 일탈에 해당한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이런 정치적 성향의 글들을 요원들은 정상적인 임무 수행이라고 믿고 올렸고, 그 배후에는 "작전을 펼 때는 정치적 표현도 서슴지 말라"는 이모 심리전단장의 독려가 있었다. 조사본부는 "작전을 펴는 데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았다"는 이 단장의 진술을 토대로 옥도경 현 사령관이나 연제욱 전 사령관(현 청와대 국방비서관)의 지시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보고 내용에 정치 관여 행위가 있었지만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는 '과실'로만 책임을 제한해 두 사람을 형사 입건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민주당 김광진 의원은 "범죄를 저지를 때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조사 결과를 보면 직속상관인 사이버사령관은 물론 국방장관, 국정원, 청와대도 몰라주는 범죄를 심리전단장이 왜 저질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며 "연간 100억원을 쓰면서 사령관이나 장관이 어떤 일을 어떻게 하는지 하나도 몰랐다는 점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상명하복의 군 문화에서 사령관 지시도 없이 심리전단장이 이렇듯 무리한 대응을 지시한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계 드러낸 한 지붕 식구 수사
조사본부가 수사에 착수하자 이 단장이 서버에 저장된 관련 자료 등의 삭제를 지시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삭제된 자료에 대한 의혹도 남았다. 국방부 측은 "삭제된 게시물은 '빅 데이터' 관련 업체에 의뢰해 복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빅 데이터란 인터넷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트위터나 블로그, 페이스북 등 소셜 커뮤니티의 활동 기록을 모아놓은 천문학적 규모의 자료를 말한다. 국방부는 삭제된 자료가 복원되면 추가 기소되는 사이버사령부 요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는데 결국 이날 수사 발표가 모든 것을 다 들여다 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이날 조사본부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가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 발표 아니겠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처음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 요원들의 '개인적 일탈'로 무마하려 하다가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마지못해 수사로 전환했을 정도로 애초부터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한 식구의 치부를 드러내려는 의지가 군 수사기관에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안규백 의원은 "특검 도입만이 국방부 장관까지 수사 대상으로 삼아 의혹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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