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들이 지나갔으며, 어떤 일로 나는 성장했는가. 한 해를 돌아보았다.
자연스럽게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올해 초여름과 초겨울, 나는 두 번의 시(詩)캠프에 참가한 적이 있다. 내가 명예교사로 참여하고 시를 쓰고 싶어 하는 15명의 사람들과 1박 2일을 지내면서 시 이야기를 나누며 시를 썼던, 타이틀도 근사해서 '찬란한 시작(詩作)'이다.
처음에 소규모 문학캠프의 제안을 받았을 때, 무조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시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 옆에 있어야 할 필요와 의무는 물론이려니와 과연 이토록 시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 나부터 어떤 답변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시를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시인 이상의 자격을 가졌다. 시를 쓰며 사는 나 같은 사람보다도 그들의 존재와 설렘이 시를 더 빛나게 한다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시를 아끼는 사람에 의해서, 시를 귀하게 여기는 시대에 의해 시는 탄생하고 빛을 발한다.
캠프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모셔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고민은 참가자를 대상으로 몇 가지 실험을 해보는 것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면서 원할 경우 자기가 애송하는 시를 낭송하도록 하자. 쑥스럽기도 하겠지만 캠프의 중심을 잡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각자 자연 속에서 시 한 편을 써보도록 하자. 시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고 시인의 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들을 듣자. 불 앞에 있으면 누구나 마음이 열리고 부드러워지면서 시심(詩心) 비슷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 날 아침에는 계곡에 앉아 물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각자 좋아하는 시 한 편씩을 낭송하게 하자. 근대적이긴 하겠지만, 잘 이어간다면 인상적인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드디어 몇 가지 계획을 가지고 참가자들을 맞이했다. 참가자들은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들떠 미리부터 마음을 열고 캠프장에 모여서인지 금세 친해졌으며 서로에 대한 배려 또한 눈에 띌 정도였다. 이런 것이 시의 힘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처음부터 나는 감동하기 시작했다.
뭔가를 시작할 때는 쑥스러운 듯했지만 모든 순서에 자신의 색을 담아냈고, 모두가 아름다운 세상을 이야기했으며, 다른 사람의 '시선'과 '다름'에 귀를 기울였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 덮어주고, 여린 사람은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 끌어주고,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은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시를 쓰기 위해 나무 밑에 혼자 앉아 애쓰고 있는 참가자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시를 쓸 때면 우리 몸에 어떤 물질이 생겨서 그게 몸 안에 흐르는 것 같아요. 결국은 그것이 시를 쓰게 하고, 시를 이어가게 하는 거지요."
나는 이 캠프를 통해 참가자들이 충분히 시적인 것과 덜 시적인 것을 구분하게 되기를 바랐고, 시가 산문하고 어떻게 얼마나 다른가를 알게 되기를 바랐으며, 우리가 한 편의 시를, 한 명의 시인을 가슴 안에 키울 때 우리가 얼마나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일 수 있는가를 절감하게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에, 어쩌면 시 없이도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이 시대에 시 캠프가 절절한 여행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다시금 나는 알았다. 더 이상 시가 책상 위에서만 가능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에게든 읽힐 수 있어야 그것이 시의 자격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시인들에게 나직하게 묻게 되는 것이다. 이토록 세상이 시를 찬밥 대우를 할 적에 과연 우리는 시를 쓰고 있기는 한 것이냐고.
이병률 시인ㆍ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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